녹기 전에

 

 나는 가끔 스물아홉부터 해마다 나에게 일어났던 변화를 적어보곤 했다. 누군가를 만났던 해, 도전했던 해. 그중 어떤 가게를 발견한 건 다섯 해 전이었다. 일터 근처에 있던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우리 동네에 다시 나타나던 날, 나는 오랜만에 그 몇 년을 돌아봤다. 이제는 메모장에 적지 않으면 머릿속으로만 떠올리기 힘들 정도다. 잠시 만 나이는 접어두고 원래 세어보던 그 나이로 나를 바라본다.
 가게는 여전하다. 곳곳에 붙은 읽을거리, 볼 거리는 머리를 댕 하고 맞은 듯 새롭다. 유머는 많은 걸 잊고 순간을 그저 웃어넘기도록 만든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웃으며 아니 어떻게 이런 맛이, 하고 감탄하게 되는 아이스크림 가게. 모두가 화이트 데이라고 외치는 날 -파이 데이-라고 적어놓은 걸 읽고 또 웃으며 아이스크림 세 가지 맛을 사왔다. 
 오래전 르시뜨피존에서 하나, 둘 데려온 유리 숟가락부터 꺼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이것만큼 혀의 감촉이 좋은 것은 없다. 아이스크림을 어디에 담아 먹을지 고민하다가 얇디얇은 크리스탈 고블렛을 꺼낸다. 난생처음 가본 도쿄에서 오직 이것을 위해 낯선 동네를 헤매다 사 온 것. 딱 맞는 종이상자 외에 별다른 포장을 하지 않았지만 무사히 나와 함께 실려온 유리잔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보면 '지금 아이스크림 스쿱 살 때야?' 라고 물을 테지만 꿋꿋하게 샀던 물건. 꽤 우직하게 자기 할 일을 잘 하게 생겼다. 그리고 월에서 구입한 알루미늄 트레이. 차가운 성질인데 차갑게만 보이지 않아 끌렸다. 어쩐지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린다. 
 블루베리 파이, 홍차, 초콜렛. 내가 고른 세 가지 맛이다. 평소에 먹던 티코나 엑설런트의 양만큼 딱 한 스쿱을 둥글게 떠서 담았다. 겹겹이 쌓인 맛이 부드럽게 전해진다. 차가운 온도로 입 안에 아주 짧은 동안 느껴지고 사라진 후 마지막으로 혀에 남는 유리의 감촉.
 다섯 해 전 만났던 사람들, 걷던 거리, 퇴근길이 따라온다.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이십대를 지나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된다고 느꼈던 그때. 사람마다 다른 주기로 나타나는 생의 고개에 첫 발을 내딛으며 누렸던 모든 순간들이 스르륵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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