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있는 것을 어찌 없는 척 하고
없는 것을 어찌 있게 할까


이 계절이 오기 전까지 예쁜 소리로 울어대는 새나 숨어 지내는 고양이를 바라볼 때 말고는 눈이 가지 않았던 나무. 이팝나무였다. 삼청동에 있는 동안 흐드러지게 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난 못 보는 것인가, 생각했던 꽃나무가 꽤 오래 버텨주었다. 자연스럽게 마종기 시인의 <저 집의 봄>이 떠올라 오랜만에 꺼내 읊었다. '긴 방황 끝내고 돌아온 봄은 애틋하게 나를 다시 유혹하고..' 둥치가 안 보이지만 나무 이름은 환히 알겠는 나무 앞에서 소리 내어 들려주고 싶었다.

최근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갈 일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수수한 꽃을 찾는 것이었다. 얼굴이 화려하거나 주인공처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꽃들은 가볍게 지나쳤다. 줄기는 어딘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뻗어져 있어야 했다. 위보단 아래로, 앞보단 옆으로. 눈을 마주치기 쉽지 않도록 말이다. 꽃은 꽃인데 배경같은 꽃. 꽃시장을 몇 바퀴 돌자 머릿속이 한 줄로 정리되었다. '사연 있어 보이는 꽃을 찾자.' 

이팝나무의 꽃은 얇고 긴 꽃잎이 별처럼 뻗어져 있었다. 꽃들은 잎들과 함께 나뭇가지를 뒤덮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사이좋게, 가볍게 흔들렸다. 그러다 햇빛을 받으면 눈처럼 빛이 났다. 실눈을 뜨고 멀리서 바라보니 꿈속 같다. 어떤 이야기라도 펼쳐질만한 풍경이었다. 꽃잎은 지긋이 자리를 지키더니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졌다. 

5월. 땀을 흘리고 시원하게 마시는 물이 달게 느껴지는 초여름이 찾아왔다. 해가 느리게 지기 시작하고 서늘한 저녁 공기가 떠오른다. 커피고 술이고 밖에서 밤공기와 함께 마시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도 맑은 기분이 주어지는 밤 또한 쉬이 맞이한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고 일기장을 꺼내 쓰는 시간으로 충분한. 나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해지는 시간. 어디선가 축하하는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비로소 알고 인정하고 있구나, 하는 말과 함께.

봄을 또 한 번 보낸 나의 사연은 깊어지고
거짓 없이 맑아만 진다. 




부드러운 빛으로 초록을 담아내는
이야기가 가득할 그릇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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