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작은 꽃밭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눈에 보이면 흙을 깔고 상추나 토마토, 고추를 키우려는 의지는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를 이어 나에게도 심어져있을까. 작은 꽃밭을 가꾸는 이름 모를 할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상추도 좋지만 꽃밭도 참 좋네요,라고. 어느 날부터 인사를 드렸지만 '꽃밭이 참 예쁘네요.'하는 다정한 말은 건네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그 길목을 뛰어 내려갔다. 바빠서 그랬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꽃밭이 엎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새봄이 찾아왔을 때 알았다. 할머니가 이사를 가셨나 보다, 하고 슬픈 생각은 접어두었다. 한여름에도 시원해 보이던 백발의 맑은 얼굴. 같은 길목의 옆집 할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깔고 과일에 보릿차를 나눠 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며칠 비가 세차게 내렸다.
주문해두었던 복숭아를 받아 소중하게 감쌌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복숭아가 왔나 하고 감탄하는데 문득 그 할머니 생각이 났다. 고운 복숭아 같은 할머니께 작은 무엇이라도 갖다 드려볼걸. 몰래 찍은 사진을 보여드릴 것을. 사실은 이사간 것이 아니라는걸, 이제는 꽃밭을 가꿀 부지런한 사람은 더 없다는걸. 누구라도 붙잡고 나누고 싶을 슬픔이었다.

꽃밭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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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소하고 촉촉하게 여름을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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