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자 기력을 되찾았다. 그동안 여름에 태어나 더위에 취약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힘이 나는 7월은 처음이었다.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5,6월이 지나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했다. 평소 운동 부족으로 땀을 흘릴 일이 없다가 날씨덕분에 노폐물이 배출된 덕일까. 시원해지는 저녁 그 시간이면 낮동안 흘리는 땀이 금방 잊혀졌다.
시원하게 땀을 흘리는 일 외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일이 찾아온 것도 큰 변화였다. 매주 목요일 세시마다 도산공원 옆에 있는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요리하는 분들을 위해 식재료, 그릇, 조리도구를 펼치고 접는 일을 맡았다. 한시간동안 진행되는 라이브 클래스를 위해 세트장을 잘 차려놓는 일이다. 한 주가 넘어갈 때마다 고비를 굽이굽이 넘겼다. 아직 팔월에 세번이 더 남은 일이지만.
7~8년 전,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출연자를 위한 케이터링을 차렸던 게 생각났다. 3년 전, 매주 진행했던 성장프로그램 강의들도 떠올랐다. 돌고 돌아 내가 원하는 일에 가장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 -물론 원하지 않는 일들에 수도없이 방해받기도 했지만- 을 붙잡았다. 나는 전날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들러 셰프의 뒤에서 보일랑말랑 스쳐 지나갈 꽃을 고르고 (이만원 선 안에서) 작가에게 건네받은 레시피 속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과정들을 상상하며 필요한 소품들을 준비했다. 그렇게 수도없이 떠올려도 작은 우드 스푼을 놓치기도 하는 일. 작고 작은 일이다.
그리고 완성 사진을 위한 그릇 준비
셰프를 섭외한 상사와 수차례 받지않는 전화를 붙잡아 이야기를 적어내려간 작가,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감독,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놓고 요리하는 셰프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도록 움직였다. 회사에 있는 소품으로 '얼추' 준비할수도 있지만 나는 이게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이라 여기며 기꺼이 시간과 돈을 썼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모두 그려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애쓰기- 그것이 내 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ssg푸드마켓, 현대식품관, 사러가마트, 이마트, 하나로마트.. 셰프의 요청은 단순히 하나의 마트에서 해결할 수 없는 재료들이 많았고 그동안 돌고 돌았던 마트들을 모두 떠올릴만큼 부지런한 발걸음이 필요했다. 정작 장소로 쓰인 곳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이미지가 되었지만 후회없다. 톤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일, 그렇게 완성한 사진을 위아래로 자른다거나 편집하는 일 모두 내 손을 떠난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기력이 좋더라도 애쓰던 중 몸은 굳어갔다. 주말 이틀이면 전혀 풀어질 것 같지 않아 칠월의 마지막 나흘을 쉬기로 한다. 사러가마트에 가는 길 처음 들어선 바늘이야기에서 구입한 실을 엮어보며, 아침 저녁으로 폼롤러와 마사지볼로 온몸을 풀어주기. 가보고 싶었던 호암미술관을 찾아 눈에 담고 팥빙수 먹기. 사두었던 책 읽기. 그 첫 시작은 대청소였다. 비로소 몇 달만에 사람이 사는 집처럼 된 공간에서 푹 쉬며 역시나 감사한 칠월을 잘 접어 보낸다.
요즘 빠져있는 명란바게트, 이성당에서 발견하자마자 구입
사온 다음날 바닥면을 팬에 바삭하게 구워 먹었는데 맛있었다
첫 장부터 마음에 드는 새로운 책
꿀을 넣지 않은 토마토주스
표지의 질감마저 자연이 느껴지는 책
밥 먹으면서 핸드폰 보지 않기, 웬만하면 밥만 먹기
오늘도 빛나는 녹색 창문
보리사초
엄마의 오이지
큰고모의 매실장아찌
흑보리를 넣어 지은 밥으로 불고기 덮밥
집에서 속이 편한 밥 해먹기
디저트는 타르틴 미니 까눌레
너무 작다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이 크기가 좋다
여름이 가기 전 또 이렇게 맛있는 빙수를 먹을 수 있을까?
떡은 메이플 시럽에 구워져 나왔다
찹쌀 국화빵
남은 여름도 때로는 땀 흘리며 때때로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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