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O
atelier O

어이없는 실수를 해결하러 급히 마트에 들렀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유턴을 하지 않으려 미리 도산대로를 건너면서 전화를 걸었고 기사님 안녕하세요, 제가 미리 건너가 있을 테니 반대편에서 뵐게요. 라고 말을 했더니
그럼 제가 좌회전해서 바로 모실게요.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잘못 들었나 했는데 분명 '모실게요' 라고 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택시에 손을 흔들어 차에 오르고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하는 짧은 인사가 오고 가자 갑자기
손님은 상위 0.1퍼센트예요.
네?

예약해서 미리 전화하고 손 흔들고 할 때 목소리, 제스처만 봐도 알아요. 사람을 워낙 많이 만나다 보니, 그냥 알 수 있어요.

손님 같은 분은 공주 대접받으면서 사셔야 해요. 공주 대접이라는 게 내가 공주야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요. 주변에서 공주 대접을 하면 그 사람은 공주가 되는 겁니다. 손님은 집이나 회사, 부서 어디서나 공주 대접을 받게 될 겁니다. 손님한테 아무도 막 대할 수 없어요. 손님은 그냥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제 말 뜻 아세요?

손님 같은 분은 그 부모님이 열심히 사셨다는 걸 그냥 알 수 있어요. 특히 어머니. 어머니가 아주 열심히 바르게 사셨을 겁니다. 저는 그냥 알 수가 있어요.

공주 대접하지 않는 곳은 가까이도 하지 마세요. 손님은 0.1퍼센트입니다. 오늘 모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모든 복을 다 끌어 가지세요.

4분
날 위한 노래를 한 곡 들려준 기분

천사를 만났다. 마음에 마침표를 여러개 찍던 중에 만난 천사.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작은 꽃밭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눈에 보이면 흙을 깔고 상추나 토마토, 고추를 키우려는 의지는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를 이어 나에게도 심어져있을까. 작은 꽃밭을 가꾸는 이름 모를 할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상추도 좋지만 꽃밭도 참 좋네요,라고. 어느 날부터 인사를 드렸지만 '꽃밭이 참 예쁘네요.'하는 다정한 말은 건네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그 길목을 뛰어 내려갔다. 바빠서 그랬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꽃밭이 엎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새봄이 찾아왔을 때 알았다. 할머니가 이사를 가셨나 보다, 하고 슬픈 생각은 접어두었다. 한여름에도 시원해 보이던 백발의 맑은 얼굴. 같은 길목의 옆집 할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깔고 과일에 보릿차를 나눠 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며칠 비가 세차게 내렸다.
주문해두었던 복숭아를 받아 소중하게 감쌌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복숭아가 왔나 하고 감탄하는데 문득 그 할머니 생각이 났다. 고운 복숭아 같은 할머니께 작은 무엇이라도 갖다 드려볼걸. 몰래 찍은 사진을 보여드릴 것을. 사실은 이사간 것이 아니라는걸, 이제는 꽃밭을 가꿀 부지런한 사람은 더 없다는걸. 누구라도 붙잡고 나누고 싶을 슬픔이었다. 









꽃밭이 있던 자리


-

나는 소소하고 촉촉하게 여름을 나고 있다


























 





나무 같은 벽
흙 같은 바닥

샘물을 닮은 유리
빗물 머금은 자갈처럼
윤기가 흐르는 옻칠
별 같은..

동물의 모든 몸부림은
결국 뿌리 근처에 몸을 뉘어
식물로 되살아나려는 한 방편이다
라는,
 이갑수의 <나무와 돌과 어떤 것> 첫 페이지가 떠오르는 곳

@wol.co.kr

















 


7월이 되자 기력을 되찾았다. 그동안 여름에 태어나 더위에 취약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힘이 나는 7월은 처음이었다.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5,6월이 지나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했다. 평소 운동 부족으로 땀을 흘릴 일이 없다가 날씨덕분에 노폐물이 배출된 덕일까. 시원해지는 저녁 그 시간이면 낮동안 흘리는 땀이 금방 잊혀졌다.

시원하게 땀을 흘리는 일 외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일이 찾아온 것도 큰 변화였다. 매주 목요일 세시마다 도산공원 옆에 있는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요리하는 분들을 위해 식재료, 그릇, 조리도구를 펼치고 접는 일을 맡았다. 한시간동안 진행되는 라이브 클래스를 위해 세트장을 잘 차려놓는 일이다. 한 주가 넘어갈 때마다 고비를 굽이굽이 넘겼다. 아직 팔월에 세번이 더 남은 일이지만.

7~8년 전,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출연자를 위한 케이터링을 차렸던 게 생각났다. 3년 전, 매주 진행했던 성장프로그램 강의들도 떠올랐다. 돌고 돌아 내가 원하는 일에 가장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 -물론 원하지 않는 일들에 수도없이 방해받기도 했지만- 을 붙잡았다. 나는 전날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들러 셰프의 뒤에서 보일랑말랑 스쳐 지나갈 꽃을 고르고 (이만원 선 안에서) 작가에게 건네받은 레시피 속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과정들을 상상하며 필요한 소품들을 준비했다. 그렇게 수도없이 떠올려도 작은 우드 스푼을 놓치기도 하는 일. 작고 작은 일이다.  

그리고 완성 사진을 위한 그릇 준비
셰프를 섭외한 상사와 수차례 받지않는 전화를 붙잡아 이야기를 적어내려간 작가,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감독,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놓고 요리하는 셰프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도록 움직였다. 회사에 있는 소품으로 '얼추' 준비할수도 있지만 나는 이게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이라 여기며 기꺼이 시간과 돈을 썼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모두 그려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애쓰기- 그것이 내 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ssg푸드마켓, 현대식품관, 사러가마트, 이마트, 하나로마트.. 셰프의 요청은 단순히 하나의 마트에서 해결할 수 없는 재료들이 많았고 그동안 돌고 돌았던 마트들을 모두 떠올릴만큼 부지런한 발걸음이 필요했다. 정작 장소로 쓰인 곳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이미지가 되었지만 후회없다. 톤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일, 그렇게 완성한 사진을 위아래로 자른다거나 편집하는 일 모두 내 손을 떠난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기력이 좋더라도 애쓰던 중 몸은 굳어갔다. 주말 이틀이면 전혀 풀어질 것 같지 않아 칠월의 마지막 나흘을 쉬기로 한다. 사러가마트에 가는 길 처음 들어선 바늘이야기에서 구입한 실을 엮어보며, 아침 저녁으로 폼롤러와 마사지볼로 온몸을 풀어주기. 가보고 싶었던 호암미술관을 찾아 눈에 담고 팥빙수 먹기. 사두었던 책 읽기. 그 첫 시작은 대청소였다. 비로소 몇 달만에 사람이 사는 집처럼 된 공간에서 푹 쉬며 역시나 감사한 칠월을 잘 접어 보낸다. 


요즘 빠져있는 명란바게트, 이성당에서 발견하자마자 구입

사온 다음날 바닥면을 팬에 바삭하게 구워 먹었는데 맛있었다

첫 장부터 마음에 드는 새로운 책

꿀을 넣지 않은 토마토주스 

표지의 질감마저 자연이 느껴지는 책 

토마토주스를 마실 때마다 결정체가 반짝반짝 아름답다

밥 먹으면서 핸드폰 보지 않기, 웬만하면 밥만 먹기

오늘도 빛나는 녹색 창문 

보리사초 

엄마의 오이지

큰고모의 매실장아찌


흑보리를 넣어 지은 밥으로 불고기 덮밥

집에서 속이 편한 밥 해먹기


디저트는 타르틴 미니 까눌레


너무 작다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이 크기가 좋다


여름이 가기 전 또 이렇게 맛있는 빙수를 먹을 수 있을까?

떡은 메이플 시럽에 구워져 나왔다


찹쌀 국화빵



남은 여름도 때로는 땀 흘리며 때때로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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