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안과 밖



2월 
궁금하던 라드유를 만들며 첫 날을 보내다.

깨끗한 돼지 비계 1kg, 물 한 컵을 넣고 익힌다. 꽤 오랜 시간 저어주니 지방이 나오면서 보글보글 끓는다. 이때 원하는 향신료를 넣고 계속 저어준다. 충분히 기름이 나왔다 싶으면 잠시 식혔다가 병에 담아 굳힌다. 처음엔 투명했던 기름이 뽀얀 우유빛으로 변한다. 반드시 냉장보관. 조금 남은 양을 상온에 두었더니 며칠 뒤, 요리할 때 삼겹살 집에 온 줄 알았다. 








완성된 라드유로 처음 만들어 본 계란 후라이.
튀기듯 부친 계란 후라이에서 묵직한 고소함이 따라온다.




다음으로 해보고 싶었던 김치볶음밥.
라드유로 만든 김치볶음밥이 궁금해서 돼지비계가 담긴 냄비 앞에 오래 서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배추김치와 익힌 갓김치 조금, 생협에서 파는 건강한 스팸 같은 걸 넣어 볶았다. 평소 대충 만들던 김치볶음밥에 온 정성을 다했더니 때에 맞게 비추는 노을 빛도 감사하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계란 후라이는 아래만 익히다가 불을 끄고 뚜껑 덮어 노른자를 반만 익혔다. 봉긋한 모양은 살아있지만 숟가락이 닿았을 때 부드럽게 퍼지는 정도였다. 딱 1인분만 만든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쉬는 월요일, 리미 대표님의 초대로 온지음 건물을 처음 가보다.
1층 팝업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였는데 빵과 반찬을 합쳐 완성한 신메뉴들을 맛보았다. 흑백 요리사에서 보았던 셰프님 두 분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웹 매거진에서 아이폰으로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는 장면도 보았다. 






경복궁 돌담길만 보면 떠오르는 나의 2014-2016 시절도 잠시 돌아보고,
아래 메뉴가 담긴 접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날 대접받은 메뉴들.
흑백요리사에서 반찬술사로 출연한 김시연 셰프님이 직접 출시할 막걸리를 소개해주었다. 
맛이 좋았던 유자 더덕생채, 간장계란 페스츄리, 배숙 페스츄리 모두 막걸리와 잘 어울렸다.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음식을 모두 비우고 나서 광화문 벌새 카페로 이동했다.
이 전날 청계천을 걷다가 우연히 세운 상가에 위치한 벌새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도 좋고 분위기도 인상 깊어 광화문 점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되었다.
대표님은 커피 한 잔을 후루룩 마시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셨다. 나는 혼자 꽤 오래 앉아있었다.

카페는 건물의 구조상 반지층이었고 위쪽으로 창문이 작게 나있었다. 저 멀리 교보문고가 있는 교보생명 빌딩이 보이는데 그 자체로 뭔가 마음이 놓였다. 오래 보고 자주 찾던 장소에 있다는 편안함이 들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연말정산으로 보낼 서류들을 다운받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같은 일터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텔레비전에 나와서 겪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주제가 요리였고 흑백요리사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위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 높이는 끝이 없고 주변과 비교하자면 그 순위는 숫자로 따질 수 없다.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때마다 나는 작년 가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내 곁에 있는 것, 내 마음에 들어있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가면 된다고 했던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카페를 나와 교보문고에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하늘이 연보라빛이었다. 교보문고 근처의 오래된 건물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반짝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항상 지나가는 종로 5가의 효제루 앞에 처음으로 '재료 소진'이 써있지 않은걸 보고 급하게 들어갔다. 다시 올 수 있는건 아마도 몇 년 후일 것 같아서 여행자의 마음으로 혼자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해물 짬뽕을 먹고 있었다. 매일 일곱시 반이면 재료 소진이 붙는 집답게 맛이 좋았다. 맥주가 먹고 싶었지만 참아내며 식사를 마쳤다. 반을 남겨 포장해 온 탕수육을 다시 튀겨 레드와인과 함께 먹었다. 
후식은 나폴레옹 크림치즈 케이크. 끼리 크림치즈를 넣었다고 써있었는데 마치 브리 치즈를 넣은 듯 몰랑몰랑한 질감의 훌륭한 치즈 케이크였다. 







꽃 한 송이 사고 싶었는데 빈손으로 나왔던 날
낡은 나무, 철판 배경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
















계속 흐리고 옆방에서는 대화가 흘러나왔던 설 연휴 전 주.
종종 나중의 내가 돌아 볼 이 시절을 떠올린다.









고마운 분이 가져다준 실험 조리 용 케이크.







한 번은 가겠지, 하다가 처음 갔던 그 한 번.
장충동 높은 곳에 올라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던 날.
피아노치며 노래하는데 아무도 호응을 안한다면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지 헤아려보고 있는 내 모습.








이번 겨울은 작두콩차를 끓여 고구마, 귤과 침대 위에서 먹는게 좋았다.





아프고 나면 꼭 생각나는 양파 수프.
양파 두개를 볶아 나온 한 그릇 먹고, 빵 위에 양파 올려도 먹어 보고. 
<원미동 사람들>은 역시 쉽게 읽힌다.








박선민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받아온 수저 받침들.





로얄민트에서 도착한 유리잔들.
파르페가 담길 유리잔들의 미래를 그려본다.







2월 참 짧다.
짧은 만큼 더욱 안과 밖을 깊숙이 살펴야겠다-고 1일부터 다짐했다. 집 안과 밖을 살피다 보면 내 마음의 안과 밖도 헤아려지겠지, 하고. 그래서인지 더욱 집을 청소하고 낯선 자리를 찾아갔다. 일터 근처 성당의 화요일 저녁 미사, 토요일 저녁의 어느 바, 숯불에 구워 먹는 고깃집에도 혼자 가봤다. 기도하고 일기를 쓰고 고기를 먹었다.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다시는 못 올 장소처럼 눈을 반짝이면 달라지는 게 많았다. 여행 중인 사람은 누구보다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고 걷는데 기쁨을 느낀다. 동시에 그 안에서는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너무도 쉽게 일어나는 걸 알고 있다.   
현실을 사는 중에 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세상 흘러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한 번씩 낯선 자리에 찾아가기로 한다. 그러다 또 가볍게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 밥도 잠도 잘 챙기면서 리듬에 맞게 움직이다가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 리듬이라는 게 삶의 전부라는 생각이 짧은 2월 중 몇 번이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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