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호암 미술관
300여년 전 그림 보며
넘실넘실 쉬다오다.
고요한 물, 유유히 흐르는 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물,
파도치는 물, 봉우리 사이를 부딪히며 요동치는 물,
안개 자욱한 물,
누군가 크게 위로받았을 잔잔한 물 사이에서 넘실넘실
금강산을 바라보는 단발령부터 장엄한 비로봉,
인왕산, 수성동 계곡, 세검정, 필운동, 압구정까지
그 시절 그 풍경을 눈에 담아본다. 가본 적 없는 곳은 신비로워 빠져들고 매일 거니는 곳은 지금과 달라서 또 빠져든다. 그러고는 자연에 파묻힌 손톱만 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눈을 크게 뜨고 보게 되는 사람들은 쉽게 그려진 듯하다. 단번에 동작이 더해지고 표정이 주어졌을 선. 마치 가늘고 곧게 뻗은 난초의 선처럼 부드럽고 확고하다. 키가 작고 모자가 없는 몸종에게서도 몸짓이 느껴진다. 귀여운 웃음을 보이는 몸종이 나타난 그림도 오래 보았다.
전시의 여운은 호암의 희원으로 이어진다. 연잎에 맺힌 물방울을 관찰하다 멀리 보이는 소나무에 감탄하고 벅수의 얼굴에서 은은하게 묻어나는 미소, 바위를 바라보다 먹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람의 손길로 애써 꾸몄을 정원이지만 억지로 내보이는 것이 없어 눈이 편안하다. 떠오르는 건 오직 오래 바라보았던 그림들뿐이다.
두 해가 지나 찾은 정원. 그때와 다른 카메라를 들고 다른 마음으로 담았다. 서른여섯에 처음 금강산을 찾은 정선은 서른일곱, 일흔 둘까지 여정을 이어갔다. 나는 아직 가 본 적 없는 도산서원, 월송정, 도담삼봉을 적어두고 금강산까지도 무지개 빛으로 그려 두었다. 300년이라는 세월 앞에 그림 속 사람들처럼 작고 또 작아만지지만 내가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는 선명하게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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