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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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FRAME 
한 칸, 한 평, 나 만의 절대공간
JJ중정갤러리
/박찬우 개인전

정겨운 개나리가 담을 따라 멋지게 늘어져있던 동네의 어느 주택도 얼마전 빈 집이 되었다.
아마도 이방인인 나는 모를 이야기가 부지런히 펼쳐지고 있는 듯한 성북동에는 오래된 나무와 집들이 하나둘 허물어지고 똑같이 생긴 신축 빌라들이 지어지고 있다. 그런 집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내부까지 모두 닮아있었다. 마치 같은 건축업자가 지은 것 처럼.

지난 봄에 사라진 집 앞 은행나무 두 그루가 더욱 그리운 가을이었다. 까치가 우는 소리 대신 들리는 공사 소음을 견디느라 창문 한번 시원하게 열어두지 못했다. 어쩌면 이 동네를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갈 곳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저녁마다 '건축탐구 집'을 찾아보며 환기한다. 바람이 잘 통하고 자연과 가까운 집. 은퇴 후 찾아가는 이상의 집들과 성북동은 반대로 가고 있다. 물론 저 먼 높은 곳의 성북동은 변화없이 고요하다. 

연차를 낸 평일 아침, 전시에 대한 아주 짧은 내용만 읽고 단숨에 이끌려 중정갤러리에 다녀왔다.
평창동 골목 끝에 있는 갤러리는 걸어 올라가는 길부터 전시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멀리 보이는 큰 창을 바라보는 순간 안의 공간이 펼쳐지는 느낌. 나무를, 붉은 벽돌의 지붕을, 저 멀리 산을 한 폭에 담은 창문은 딱 그곳에 어울렸다. 시원하게 펼쳐질 한 쪽의 창문은 더욱 근사했다.

작가는 숲, 바다, 들판, 도시에 놓인 한 평의 흰 박스를 멀리서 담아냈다. 흰 박스는 정육면체로 보이기도 했지만 한 쪽이 뚫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마지막으로는 두 면을 열어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을 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한 평의 작은 공간이 인간이 소유한 집처럼 보였고 편히 쉴 방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결국 내면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 마음가짐, 상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평의 마음에서 바라보는 무한대의 수평선- 곧 무한한 마음에서 그려지는 무한한 힘. 

한 평의 둥근 샘물 위, 길게 매달린 돌이 시계 추처럼 움직였다.
놀랍도록 잔잔한 파장이 가끔 나타나 한 평 전체로 퍼졌다, 다시 사라졌다.
거의 움직이지 않다시피 움직이는 제 속도의 돌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꼈다.






 



반숙 계란을 위해 필요한 시간
끓는 물에 넣어 6분 30초

냄비밥은 여전히 감에 의존하고 있지만
계란을 삶을 때는 오래전 사놓은 수동 타이머를 쓰기로했다.
계란 다섯 알을 간장에 재워두고 부자가 된듯 며칠간 든든했다.

단단한 김, 송이버섯을 넣어 지은 밥, 간장 계란장, 후식으로 무화과를 잔뜩 먹었던 어느 저녁.
올 봄에 나왔다는 마종기 시인의 새 에세이집은 조금씩 아껴읽기로 한다.















밤 열한시에 카레를 끓인다는건 
낮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모두 작게 썰어
윤곽이 사라질 때까지 뭉근하게
끓여버리겠다는 다짐 

그러고는 다음날 더 맛있어진 카레를 먹으며 웃으면 끝

/

문득 엄마표 카레가 먹고싶어 퇴근 후 온갖 재료를 썰어 카레를 만들었다.
양파, 감자, 당근을 내 마음대로 써는 것부터 보글보글 끓는 카레를 천천히 휘젓는 과정까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뚜껑을 닫고 약한 불로 끓여도 괜찮겠지만 뭔가 냄비 앞에 붙어있고만 싶었다. 그렇게 삼분카레가 아닌 한 시간 카레를 완성했다. 평일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고수, 그릭요거트, 토마토+라임+고수, 난, 사워도우, 흑미밥, 샤프론 우린 밥, 맥주, 와인, 커피와 다양하게 즐겼다. 밥이 없이도 좋았다. 요거트와 함께 먹으니 이스탄불이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한 달 사이에 두 번
- 열한시 넘어 카레를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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