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과 초록의 여름



멀리 제주에서 온 노랑이 여름의 인사를 건넨다. 리미 대표님이 제주 여행을 마치고 손에 쥐어주신 초당옥수수 셋. 달콤하고 아삭한 알알마다 여름이 맺혀있는 듯하다. 고수와 함께 옥수수 전분가루, 물로 휘저어 달군 기름에 튀기듯 부쳤다. 냉동실에 있던 명태회 비빔냉면을 꺼내 라면보다 빠르게 완성. 쉬는 첫날 겨우 차려 먹은 한 끼.




다음 날은 밥을 지었다. 아침부터 이런 장면을 보다니, 하루의 시작이 옥수수의 노랑처럼 발랄했다. 



오랜만에 커피와 함께 에이스 과자를 먹었다. 빠다코코낫과 에이스 중 어느 것이 더 커피와 어울릴까? 하고 혼자 진지해봤다. 최근 먹었던 빠다코코낫은 어쩐지 옛날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에이스가 더 커피와 어울리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 다음엔 집이 아닌 밖에서 진한 카푸치노와 함께 에이스를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꽤 오래 책의 속도가 멈춰있었다.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에 여러 번 나오는 -먼 곳의 푸름-을 읽다가 멈추고,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데버라 리비의 <모든 것을 본 남자>를 만났고 쉬는 하루 동안 모두 읽어나갔다. 나의 시력에도 두뇌 회전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걸 알고 새롭게 시작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 



일 하는 동안에도, 쉬는 날에도 꽤 노력해서 챙기는 물 한 잔.




꽤 오래 찾아 헤매던 물건. 모닝글로리에서 나오는 비움 이라는 라인이다. 투명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위에 작게 글씨를 쓸 수도 있다. 최근 일터나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알파, 모닝글로리가 문을 닫는 걸 목격해서인지 이런 작은 물건들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도쿄 빈티지 샵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표시를 해본다. Tamana kagawa라는 요리 연구가의 책으로 오직 빈티지 그릇에 음식을 담는 방식을 소개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제목도 모르고 사왔지만 찾아보니 <그릇은 자유롭게 상냥하게 : 맛있어 보이는 그릇 선택 및 사용법>라고 한다. 器は自由におおらかに: おいしく見える器の選び方・使い方



어떤 날의 식사. 여름이 시작되고 나는 꽤 자주 알배추, 대파, 소고기나 오리고기, 방울 토마토, 애호박을 무쇠 냄비에 담고 쯔유와 맛술을 휘이 둘러 뚜껑을 닫고 쪄 먹는다. 특히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냄비를 불에 올리고 찬물로 샤워를 한다. 땀이 흐를 때는 눈물처럼 느껴지도록 지친 상태였다가 맥주와 함께 자리에 앉을 때는 더 바랄 게 없다. 



땅콩 버터, 간장, 올리고당, 피쉬소스, 식초 넣어 만든 소스. 고수를 넣으면 더 좋고 깻잎을 곁들이기도 했다.







애호박이 적당히 익어 더 좋았던 날






올해 장마는 유난히 짧았다. 유월 말부터 슬슬 소식이 들려오고 내 생일엔 꼭 비가 내렸던 날들과 달리 우산이 날아갈 것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니 장마가 끝났단다. 아직 신발이 젖어 찜찜했던 날도 없었고 한낮인데도 하늘이 깜깜했던 날도 없었다. 보통 기나긴 장마가 끝나면 매미가 합창을 하며 여름의 시작을 알리곤 했다. 지금은 비도 멈추고 매미는 울지 않는 그런 이상한 칠월을 맞이했다. 나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소리를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어느 귀했던, 여름 비가 알알이 맺혀 출근길을 밝혀주던 날에. 이제서야 큰 카메라에 적응해 간다고 느낀다. 
나는 수국의 이런 얼굴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또 다른 어느 귀했던, 친구와 함께 노을을 보았던 날에.
요즘 들어 더 자주 찾는 교보문고 광화문의 2025년 7월의 얼굴. 

나도 여름이 좋다. 노랑과 초록이 주변을 가득 채워주어서. 그저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흔들리는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도 가끔 퍼붓는 비도 불평 없이 그저 여름이니까, 하고 넘어가며. 언덕을 오르고 시원한 샤워에 기뻐하며 빗소리를 틀어놓고 잠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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