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멀리서 보내 준
오후 두시 삼십분의 자리
새색시처럼 고운 분홍이 나이 지긋한 회색과 어우러진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 일 층에서 인사한다. 건너편에 의자가 있어 잠시 앉았다. 돌잔치를 끝내고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직원들, 여행 온 외국인들. 시선 둘 곳이 편안해서인지 금방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이십 층으로 올라가자 높은 층고와 밤섬을 내려다보는 통창이 눈앞으로 열린다.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양혜규 작가의 창공해로 작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땐 우주선 같았는데 이번엔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날갯짓 같다. 아래로는 접어 쉬는 날개, 위로 갈수록 바람 따라 이곳으로 저곳으로 접혔다 펴지는 날개.
집이나 일하는 곳이 조금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차였다. 팔이나 다리에 걸리는 것 없이, 가득 차 있는 자리보다 텅 빈 자리가 더 많은 곳을 상상했다. 한 때 유행처럼 자주 보이던 모든 걸 비워내는 사람들의 집을 꿈 꿨던 건 여전히 아니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에 가까운 풍경을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조금 답답했던 마음이 습하고 더운 공기와 함께 무겁게 가라앉았다.
안내받은 자리, 내가 앉은 자리의 오른편 높은 하늘에 해가 떠 있었다.
흐린 날씨였다. 구름 속 햇빛이 잠시 제 얼굴을 보였을 때 대리석 위 흰 접시에 놓인 밀푀유를 비추었다. 이것은 자연광 수업인가 싶을 때 까만 블라인드가 내려왔다. 그럼에도 빼꼼 보이는 한강, 건너편 여의도의 풍경에 답답함은 없었다.
돌아보니 나의 첫 애프터눈 티 경험도 언니 덕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언니를 따라 나의 기억력도 희미해져 가지만 열심히 찍었던 사진 속 언니와 나, 형부의 얼굴은 남아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언니와 제대로 된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 빈 손으로 언니만을 보러 떠났던 여행이었다.
애프터눈 티답게 은은한 차를 마실까 했지만 커피부터 찾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나오는 마라 감바스에는 맥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익숙한 서울 속 낯선 장소에 앉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며. 작고 달콤한 케이크보다도 마음 쉴 곳을 선물받아 기뻤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