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밥

 




한 달에 한두 번 장을 본다. 오랜만에 아보카도와 오렌지, 키위를 사 온 날. 먹다 남은 토마토 하나와 설날 집에서 가져온 마늘 셋, 새로 온 아보카도가 모였다. 난생처음 산 고사리도 있다.
평일에 먹을만 한 것이 마땅히 없다. 아침, 점심도 그렇지만 특히 저녁이 심하다. 하루를 잘 보내고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고 싶을 뿐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큰 문제로 다가오던 어느날, 엄마가 준 고사리가 생각났다. 삶은 고사리를 얼려서 내 손에 쥐어준 걸 냉장고로 옮겨두었던 것이다. 
나는 마늘 두 쪽을 다지고 쪽파를 썰었다. 국간장과 어간장에 고사리를 조물조물 무쳐놓았다가 달군 팬에 마늘부터 볶았다. 고사리와 함께 볶다가 물을 넣고 바글바글 조리고 마지막으로 쪽파, 들기름, 깨를 넣으면 완성이다. 갓 지은 냄비밥과 뜨거운 고사리 볶음으로 상을 차렸다.
고사리가 이렇게 맛있었나, 싶었던 밤. 향긋하기로는 포르치니 버섯 못지않고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함에 하루의 수고로움이 사르르 녹았던 밤. 그렇게 감동받고는 제주산 말린 고사리를 두 팩이나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정월대보름에 마신 레드 와인








어느날 만들었던 굴파스타
당진 시장에서 온 굴로 만들었다.
시장 할머니의 태도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동생과 나에게 큰 귀감을 주었던 그 굴이다.




겨울을 나고 있는 나의 식물들




7분동안 불려놨다가 3분간 삶은 버미셀라와 은근하게 데친 새우,
새싹과 어린잎 채소, 고수, 익은 아보카도, 튀긴 어니언
피쉬소스, 간장, 코코넛 슈가, 타마린드, 라임즙으로 만든 소스
땅콩 듬뿍 올린 샐러드





하나 남은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




다시 돌아온 주말




일터 이웃인 차차이테에서 사 온 무화과&피칸 스콘







고사리는 네 시간 동안 불려놨다가 삶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조금씩 꺼내서 볶으면 더할 나위 없는 저녁거리라는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된다.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또다시 좋아지기도 하는 건 2월이 아무리 짧은 달이라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다시 돌아온 쉬는 날. 이불과 옷 빨래, 냉장고를 정리하고 하루 종일 밀린 일을 해치웠다. 이른 저녁으로 고사리 리조또와 레몬에이드를 차려놓으니 들기름의 고소함이 햇빛에 번진다. 해가 떠있는 동안 식사를 챙기는 하루는 꼭 그렇게 흘러간다.  마음 상하는 일 없이 고요하게. 지금 바라는 건 정갈한 냉장고로 다음 장 보는 날을 맞이하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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