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숨을 조금 고르고 있었다.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한강과 한남동,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며 입김을 내뿜었다. 하아. 내 몸 어딘가 부서졌는지 살피기도 전에 뒤집힌 택시로 돌아가 카메라와 노트북이 있는 가방을 챙겨 나왔다. 여전히 신음 소리만 내는 운전석의 택시 기사에게는 다가갈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기사님 괜찮으세요.
끝을 올려야 하는 말에 힘이 빠져있었다. 저쪽에서 사고를 낸 남자가 다가와
괜찮으세요? 묻는다. 신고해 주세요. 전 핸드폰이 저 안에 있어서.
추운 것도 모르고 서있는 나와 엉망이 된 도로. 그 옆으로 느릿느릿 차들이 지나간다. 이렇게 막히는 중에 왜 이 택시는 뒤집힌 걸까. 그 사이에 택시 기사는 겨우 몸만 빠져나와 눈이 녹아 축축한 길에 망연자실하며 앉아있다. 기사님 괜찮으세요. 나는 여전히 물음표가 빠진 말만 맥없이 허공에 뱉어낸다. 조금씩 추워진다. 뒷좌석에 앉아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바라보던 눈의 풍경이 이제야 피부로 느껴진다. 첫눈.
첫눈이 오던
12월을 나흘 앞 둔
어느 수요일에
돌이켜보니 나는 영상을 찍고 있었다. 손에 있던 핸드폰은 어디갔을까. 창밖으로 날아갔을까. 부서진 택시 안에 있을까. 그 작은 기계가 뭐라고 나는 사고 현장을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경찰에게 내 핸드폰이 없어졌다고 몇 번이나 말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없고 찾아주지도 않은 나의 핸드폰. 핸드폰뿐 아니라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사고 당한 내 몸. 그 바보 같은 기계 없이 무거운 짐과 함께 어느 병원 앞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스스로 집까지 가야 한다니, 사는 건 미션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는 삶이 축제 같더니.
다음 날 다시 스스로 찾아간 병원에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침식사 왔습니다, 하는 소리로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고 12시, 5시에 이어 밥을 먹는 생활을 3주 동안 이어나갔다. 머리 회전이 잘 안되는 듯해 심호흡을 자주 하게 되던 날들. 두 달 전 다녀온 치앙마이의 호시하나 빌리지를 떠올리며 고요한 병실을 견뎠다. 수영과 맥주만 없을 뿐. 물에 누워 날아가는 새의 배를 바라보던 마음을 되새겼다.

포근함의 반대말
있어야 할 곳에 없다는 것
낙엽 위로 내리던 눈이 얼마나 포근해 보이던지.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성북동을 지나 압구정 현대 맨션을 찍으며 출근길이 즐거웠다. 압구정동 그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낮은 회색 벽돌의 집은 겨울에도 예쁘구나 하며. 모빌같은 나무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아침의 기록과는 다르게 흘러간 하루. 일 년 반 만에 다시 찾은 어느 장소와 마주친 사람, 힘들었던 마음. 그렇게 이어진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철과 유리가 차갑게 아스팔트에 깨질 때. 다시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기로 한다. 사라지지 않을 내가 남겨둘 것을 떠올리기로 한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