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번 버스가 남산 1호 터널을 빠져나와 블루스퀘어 옆 고가도로를 미끄러지듯 내달릴 때. 겨우 붙잡고 있던 손잡이에 힘을 들어가고 시선은 최대한 창밖 먼 곳으로 던진다. 두 다리에 동그르르 굴러가는 바퀴가 느껴질 정도로 몸체에 비해 가볍기만 한 버스. 안전벨트도 없이 겨우 서있는 내가 안전할 수 있을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린다는 걸 꽤 늦게 알았다. 높은 다리에서는 아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땅에 닿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견과류를 먹으면 기침이 나는 건 알레르기 증상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 일. 어려서부터 나는 그저 아몬드나 땅콩을 우유나 물과 함께 먹곤 했다.
삼사 년 전부터 얼굴의 피부가 빨개졌다. 이십 대 후반에도 피부 트러블을 심하게 겪었던 터라 '다시 또 좋아지겠지'하고 쉽게 생각했다. 엄마는 얼굴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며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치과보다도 피부과에 가는 일이 나에게는 더 무섭게 느껴졌다. 퇴사한 이후로도 가끔 심장이 뛰는 소리에 잠이 들기 어렵게 느껴지자 이 모든 증상이 불안과 연관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차림과 동시에 마음의 열을 내리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나를 보살피며 지낸지 오래여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더위에 약해 여름이 무섭다가도 '어차피 두 번의 생리만 지나면 끝이 날 여름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동안 아랫배가 묵직한 것 빼고는 아무 일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름에 시작한 첫 생리는 두통이 심해 게보린이라는 걸 처음 사 먹었고 '이걸 한 번 더 겪어야 여름이 끝나는 것인가.'하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이틀이 지나자 다시 태어난 듯 몸이 가벼워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고 비만 어설프게 내리는 중에 나의 생일이 찾아왔다. 하나 분명히 알겠는 것은 생일에는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그 주간에 공연을 예매하면 이렇게나 좋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이 분명해지고 또 뒤바뀌기도 하는 앞 날을 기대한다고 소원을 빌어본다. 인생은 토성의 고리와 같다는 동생의 말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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