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장 가장 위 칸

 


작은 유리잔 하나에 한 조각씩,
꿈을 모아왔다는 말은 어쩌면 우스울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필요한 게 세상에 없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잔 하나는 그리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겨우 하나 사서 물도 술도 주스도 담아 마셔보고
아 입술에 닿는 감촉, 사진에 담기는 모양
그렇게 느끼고 또 느껴봐서
나만의 애정하는 잔을 하나씩 늘려갔다.

물결이 일렁이는 잔을 어렵게 구해서 하나둘 아껴 쓰다가
곧 전시를 위해 여러 박스를 받아 든 대표님은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그 행복이 가득 담긴 박스를 함께 풀어가면서,
어떤 것으로도 이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고
일본어가 가득 빳빳한 신문지를 펼치며 생각했다.

나의 첫 그릇장이 생기던 날
스팀으로 유리를 닦고 곱게 말려
가장 위 칸을 유리잔들에게 내어주었을 때.
하나하나 나에게 오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가 기특하기만 했다.

나에게 온 유리잔은 투명할 만큼 연약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깨지지 않고 단단했다.
그만큼 내가 아껴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꿋꿋하게도 지켜오는 내 꿈들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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