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서보 화백을 색으로 처음 만났다. 어디선가 보고는 부욱 뜯어 작은 주방에 붙여 놓은 그림. 알고 보니 박서보 화백의 색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곁에 두고 싶은 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떠올렸다. 색에서 벗어나 질감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지난 부산 여행 중 우연히 찾았던 조현화랑에서였다. 깊은 인상을 받아 항상 가고 싶었던 기지재단 도슨트 투어를 예약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차를 써가며 신청한 날짜는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기지재단은 화백의 집이 있는 건물이었다. 전시를 위해 공개된 일부 공간에 들어섰지만 화백의 흔적이 이곳 저곳에 보였다. 미술관이 아닌 곳에서 작품을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작품의 주변에는 그 어떤 장치도 없었다. 마치 집처럼.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 주시는 분의 태도에 몰입하며 전문성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감탄했다.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볼 수도 있고 정원으로 나가 창문에 비친 모습을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화백이 모은 달항아리나 도자기, 가구들을 함께 느꼈다. 부인분이 직접 가꿨다는 정원의 다른 계절과 날씨가 궁금해졌다. 나오는 길에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인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이곳의 주인이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을 정리하다가 이제야 사진을 올려본다.
이제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가르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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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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