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터의 곳곳에 꽃들이 자리 잡았다.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던 길목에는 호접난과 높게 치솟은 보라색 꽃이 길을 밝혔다. 작은 공간에는 조팝나무와 길게 뻗은 가지들이 이곳저곳에 놓였다. 그리고 꽃만큼이나 화려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의외의 장소에서 나눠지는 진솔한 대화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삼 일째 되는 날, 옆집 차실 선생님은 언제나 그랬듯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생기 가득한 수선화 몇 송이와 함께.
두 달 전, 처음 출근하고 한동안 차실은 비어있었다. 나는 마실 물을 뜨러 차실을 오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시들어가는 동백꽃 나뭇가지가 눈에 밟혔다. 주인이 아닌 기물을 만지는 것이 조심스러워 애쓰며 지나쳤다. 참 곱게 뻗은 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수수한 꽃들을 직접 들고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자연에서 가져오시는 듯하다.
수선화에 반해 향기도 맡아보고 사진도 찍고 몇 가지를 여쭤봤다. 이렇게 예쁜 꽃이 어디서 온 건가요. 제주도에서 친구분이 직접 들고 왔다고. 어떤 날짜에 왔었던 어느 목소리가 그 친구였다는 이야기에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공간의 특성상 차실과 내가 있는 곳은 음악과 대화가 공유된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음악을 틀기 위해 차실에 들어가 수선화부터 살폈다. 히아신스보다 더 끝내주는 향기에 감탄과 칭찬이 절로 나온다. 기특한 꽃이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화병에 손을 대고 신선한 물로 갈아주었다. 곧 선생님이 등장해 물을 갈아주었다고 말씀드렸다. 웃으시며 오늘 제주도에서 수선화가 더 보내질 예정이라고 - 몇 줄기 집에 가져가라고 하신다. 나는 거절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행사가 끝나고 화려한 꽃은 테이블 한쪽 끝으로 옮겨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꽃들은 말할 수 없이 눈부셨다. 옆에 노트북을 펼치며 -이런 꽃 옆에서는 누구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것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아시스에 물을 부었지만 어쩐 일인지 꽃들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수선화는 조금은 추운 곳에서 더 잘 자란다고 들었다. 서늘한 화장실에 두면 보름까지도 볼 수 있다고. 나는 아기 다루듯 곱게 싸서 집으로 무사히 데려왔다. 한 손도 아니고 꼭 두 손으로 쓰다듬고 싶어지는 둥근 분청화병을 꺼내 수선화를 꽂았다. 마치 들꽃처럼 편안하다. 어느 어르신의 칠순이나 부모님의 생신날 보내고 싶은 건 사실 이런 꽃이라는걸. 마음으로 알았다.
1월 8일
새해 들어 처음 책상 앞에 앉았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온 다음날
집에 누군가가 다녀가면 어딘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천진난만하여 밝은 사람이나 걱정이 많은 사람 구분 없이 나에게 무얼 건네고 간다.
집은 깨끗해지고 다시 정리하는 데에도 부지런해진다.
준비 시간이 세 시간인지도 모를
허브 전병과 육절판은 작년 5월에 배웠던 레몬밤키친 실장님의 레시피
아롱사태 1.2kg은 한 시간 반 동안 삶아냈다.
이것 역시 촬영 때 만들어 본, 전 직장 동료의 레시피였다.
나는 레시피를 노트에 옮겨 적고
재료를 썰고 또 썰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친구들 덕분에 칼을 쥐고 사진도 찍었다.
퇴사하고 처음 요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는 더 많은 요리에 도전하고
내가 하고 싶은 촬영을 하고
기물들은 아끼는 만큼 자주 꺼내 쓰려 한다.
물잔, 술잔, 앞접시
마지막은 버섯과 계란 넣어 죽으로 마무리

노트에 3인 초대요리 후기를 적어내려가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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