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주스와 아침식사



선 오렌지주스 후 롱블랙 

십년도 더 전에 카페에서 일할 적 문을 열자마자 개 한마리와 등장하는 어느 남자가 있었다. 신문을 들고 털레털레 걸어와서는 오렌지주스와 롱블랙 한 잔을 같이 시켰다. 그 주스 한 잔을 위해선 오렌지 두세개가 필요했는데 주문과 동시에 바로 짜냈다. 남자는 신선한 오렌지주스로 일단 속을 채우고 커피를 마셨다. 개는 의젓하게 그 옆에 앉아 곁을 지켰다. 커피를 받았을 때 웃음 짓던 얼굴과 그 여유로운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웬만해선 빈 속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한번도 윗배가 불편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왜인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 그렇게 한다. 주중에는 물이나 우유로 첫 배를 채운다.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짜 마시거나 아침식사를 직접 차려 먹을 여유가 없어서 '모닝 커피'란 건 주중에 있을 수 없는 영역이다.

주말이면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토요일 아침이라는 기쁨에 그만 습관을 거스르고 싶을 때마다 그 남자를 떠올리며 뭐라도 마시고 먹는다. 주스 한 잔을 따라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아침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그릇을 가득 채운다.

주문하신 아침식사 나왔습니다.

내가 먹기 위해 직접 만들었지만 "주문하신 아침식사 나왔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가 먹으라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었니, 묻고 싶은 심정이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로메인을 꺼냈다가 촬영을 앞둔 드레싱을 한 번 만들어볼 겸 시저샐러드를 만들고, 눈에 들어오는 표고버섯을 볶고 갈아 스프를 만든다. 크루통과 베이컨을 구워내고 시저샐러드와 버섯 스프 위에 모두 뿌릴 수 있음에 기뻐한다. 감자튀김같은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마트에서 사온 칩스를 옆에 둔다. 거기에 오렌지주스 한 잔.

또 촬영을 마치고는 새로 빠져 든 그릭요거트 스프레드를 만든다. 크림치즈를 한 통 사면 끝까지 먹은 적이 없는 나에게는 훌륭한 대체품이다. 그릭요거트에 오이와 고수를 잘게 썰어 넣고 소금, 올리브오일, 레몬즙을 뿌려 부드럽게 섞어준다. 거기에 어울리는 사워도우 한 조각을 구워내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달걀 두 알을 풀어 스크램블을 만든다. 여기에도 오렌지주스 한 잔.

커피 한 잔을 위해 참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는 주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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