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데쳐서 국간장 조금에,
소금 아주 조금!"
소금 아주 조금!"
카트에 부지깽이를 담는 뒤통수에 다시 한번 레시피가 전해진다. 오직 '울릉도에서 왔다.'라는 한마디에 멈춰 선 나에게 아주머니는 몇 마디 던지지도 않았다. -이건 보약이다, 연하고 맛있다, 살짝 데쳐 먹으면 된다-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봉투에 담기는 부지깽이들. 봉투를 저울에 올리자 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다.
"제가 혼자 살아서요. 좀 덜어주세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한 줌 덜더니 가격표를 붙이고는 조금 더 담는다. 나는 귀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지깽이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제가 혼자 살아서요. 좀 덜어주세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한 줌 덜더니 가격표를 붙이고는 조금 더 담는다. 나는 귀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지깽이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올해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머나먼 멕시코시티도 있지만 가깝게는 울릉도가 1순위다. 신비의 섬이라 불리는 울릉도. 제주도처럼 비행기 티켓 한 장이면 편히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더욱 궁금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어쩌면 멀리 떠난 만큼 마음을 가볍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일수도 있다.
다들 어떻게 풀고 있는걸까. 상념으로 가득 찬 평일을 보내고 부지깽이를 꺼내 씻었다. 울릉도에서 막 도착했다는 부지깽이는 그렇게 일주일간 도시의 어느 작은 냉장고에 박혀 있었다. 노랗게 변해버린 잎이 하나둘 보였지만 줄기 부분은 여전히 선홍빛이다. 울릉도의 바람을 품고 자라서 그런지 그 빛깔이 어딘가 굳세 보인다.
그 굳센 부분을 살짝 다듬고 데쳐 조물조물 무쳤다. 딱 주먹만큼 먹어도 서너 번은 더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향긋함은 생각보다 은은했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했는데 시금치도 두릅도 아닌 것이 새로운 맛이었다. 문득 김밥을 싸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동네를 삼십분 정도 오르면 북악산이 나온다. 가까이에 그만큼 숨이 트이는 장소가 있지만 지금까지 찾았던 건 손에 꼽을 정도다. 햇빛에 빛나는 흰색 다리를 건너 숲속 도서관을 지나 조금만 걸어 오르면 서울의 시내가 훤히 보이는 하늘전망대에 도착한다. 벤치에 앉아 산을 바라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는 곳. 그곳에 갈 때마다 김밥을 먹기 좋은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있는 재료를 꺼내 김밥을 말았다. 김밥김도, 김밥말이도 없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계란 지단을 부치고 표고버섯은 얇게 썰어 볶았다. 매실 장아찌는 반으로 썰어 줄지어 넣기로 한다.
막 움트기 시작한 꽃봉오리와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여럿 만나며 산을 올랐다. 아직 차가운 산 속의 공기에 머리가 더없이 맑아졌다. 고소한 김밥을 씹어 먹으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김밥을 먹기 좋은 장소가 차고 넘칠 울릉도를 상상하며 마지막 남은 부지깽이를 깨끗하게 비웠다.
오직 자연스러운 것들에 둘러싸여 오후를 보냈다. 가볍게 내려오니 동네엔 어느새 그림자가 길게 그려져 있었다. 오늘 잠시 떠나있던 만큼 풀어진 몸과 마음을 살펴본다. 머지않아 충분히 떠날 것을 결심하며, 한껏 가까워질 먼 곳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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