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주변의 친구들이 치앙마이를 찾고 또 찾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가본 적 없는 나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매력이 넘쳐나는 듯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숙소에 예약해서 다녀왔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데자뷰를 느꼈다. 알고 보니 며칠 전 다른 친구도 같은 숙소를 다녀왔던 것이었다.

숙소 주인의 천사 같은 어린 아들이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었다고 들었다. 보여준 사진이 잘 기억은 나지 않고 노란빛이 탐스러운 망고만이 또렷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건 어느 한적한 휴가지의 느낌. 느지막이 일어나 요거트볼을 먹고 나른하게 수영하다가 향긋한 커피 한잔하는 그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 숙소의 주인이 서울에서 이틀간 마켓을 연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연희동을구경할 겸 일찍 집을 나섰다. 신기하게도 이 동네에 들어설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제나 걷게 되는 길목을 따라 메종 오르세로 향했다. 

치앙마이에서 어렵게 들고 왔을 물건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었다. 메종 오르세의 공간에 원래 있었던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랜 기간 지켜봐서 나만 친근한 주인과 그 남편, 그리고 천사같은 아이들 중 한 명을 보았다. 내가 상상한 것 보다는 의젓한 어린이였다.

직접 손으로 짜냈다는 천과 자개 스푼을 골랐다. 사자 모양이 그려진 황동 몰드도 하나 담았다. 여행지였다면 귀여운 팔찌나 바구니도 하나 샀겠지만 일상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자제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계산을 하면서 치앙마이에 꼭 가보고 싶다고 몇 마디 건넸더니 주인이 웃으며 말한다. "다음에 치앙마이에서 뵐게요."라고.

옆방에서는 미소가 환한 분이 만드는 쿠키와 커피, 고양이 브로치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어딘가 맑고 순수하고 그런데 세련된 느낌. 이게 바로 치앙마이 분위기인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살구빛 봉투까지 예뻐 보이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사러가마켓 앞 작은 파스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매뉴팩트커피에서 아이스 라떼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며 오자크래프트가 있는 연남동 끄트머리 쪽까지 걷기로 한다.

연희동에서 연남동을 잇는 큰 길을 건너는데 막 스무살이 넘은 듯한 여자 학생을 보았다. '누가 보아도' 주말 외출이라 한껏 멋을 낸 모습으로 온몸에 새옷을 두르고 빵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같이 걷던 남자친구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짧은 치마도 화려한 옷도 아니었지만 온몸으로 내뿜는 새내기의 설렘이 보기 드물게 귀한 모습이었다.

파주의 한적한 곳에 있던 오자크래프트의 작업실을 기억한다. 첫눈에 작가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멋진 분과 수줍게 인사를 나눴었다. 벽에 걸려있던 나뭇가지로 만든 모빌과 안쪽에 반짝이던 작업 공간, 들여다보게 되는 그릇들과 직접 써주는 영수증, 포장 방식까지 생생하다. 그곳에서 구입했던 첫 그릇은 아직도 자주 꺼내 쓸 정도로 애정한다.

그 이후로 연희동에서 두 번 옮겨지고 이번 연남동까지. 갈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릇 뒷면까지 만지작거리게 되는데 이번 공간 역시 좋았다. 지금은 없어진 오르에르 삼층이 떠오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작품들을 보물찾기 하듯 하나하나 들여다 보았다. 연희동에서는 구석에 숨겨져있던 뾰자의 존재가 테이블 위에 놓인 것도 재미있었다. 아직 판매하지 않는다는 블랙의 소재와 멈춰있는 lp의 컬러, 큰 창으로 들어오는 포근한 빛과 벽, 바닥, 낡은 문으로 만든 테이블까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부드럽게 담겼다.

그리고 파주에서 보았던 그 모빌을 만든 작가님, 믹스뚜 아뜰리에의 꽃이 있었다.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놓인 꽃을 서성이며 '이건 회사에서 나올 수 없는 흐름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쇼룸에 들어오기 전 건너편에 있던 어느 집을 보았을 때처럼 마음 한구석이 움직였다. 찍어내듯 만드는 그림이 아닌 작품이 그려지는 곳이 바로 아뜰리에라는 생각도 들었다.

늦은 줄로만 알았던 꽃구경을 실컷 하면서 연남동 끄트머리를 걸었다. 그 좁은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짧게 남은 철길을 올라타면서 노는 아이들과 구석구석을 킁킁대는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지나가기만 했던 그래놀라 집에서 그릭요거트볼을 먹고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천장에는 나무로 된 실링팬이 돌아가고 있었고 문밖에 초록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치앙마이가 이런 느낌일까, 계속 상상했다.

해가 질 때까지 걷고 또 걷다가, 넓은 물길을 따라갔다. 기차가 지나가는 불빛도 가로등 아래 천천히 퍼지는 꽃가루도, 어딘가 노래가 흘러나올 것처럼 보였다.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사람들 중 고혹적인 향기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하는 어느 중년 여성을 만났다. 샴푸나 향수로 만들 수 없는 향이었다. 아마도 바디워시나 바디로션이 피부를 타고 내뿜는 향이 아니었을까. 따라가서 묻고 싶을 정도로 처음 맡아보는 진하고 복잡한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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