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몬.
시드니 도심에서 기차를 타고 16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는 작은 동네가 나온다. Artarmon.
역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나가면 작은 일본 라멘 식당이 나타났다. 이제는 그 맛의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항상 사람들이 많은 맛집이었다. 그리고 역의 왼쪽으로는 시드니 어느 작은 동네와 비슷하게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약국, 빵집, 슈퍼마켓, 여러 카페들, 우체국. 그중 한 카페에는 시드니에서 처음으로 일자리를 구한 평범한 스물네 살의 내가 있었다.
동이 트기도 전 기차를 타고 아타몬 역에 내려 카페로 향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 나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좋은 빛깔로 대학교를 다니던 또래 친구 한 명이 좁고 어두운 주방에 함께 있었다. 우리는 허덕이며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여자 사장님은 옆에서 뚝딱, 샐러드와 호박 스프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우리는 어디선가 배달되어 온 바나나 브레드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랩으로 싸는 일로 주방 일을 마무리했다. 어느덧 홀로 나가볼 시간, 일곱시쯤 되었을 것이다.
회색빛 얼굴로 출근길에 나선 손님들이 하나둘 모였다. 기차를 타기 전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열 명이 넘게 줄을 섰다. 그중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포장해가는 손님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계산대 앞에 랩으로 곱게 싸서 줄지어놓은 바나나 브레드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바나나 브레드.
오리지널, 블루베리가 들어간 것, 초콜릿 칩이 박혀있는 맛까지 총 세가지인 그 바나나 브레드는 한 조각에 2불 50센트 정도 했었나. 커피가 2불 정도이니 함께 사면 쨍그랑, 동전 몇 개로 가볍게 사 먹기 좋은 간식거리였다. 덩어리째 우유 박스 같은 곳에 배달되어 온 바나나 브레드의 거래명세서를 몰래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렇게 생각했던 건 분명히 떠오른다.
'이거 한 줄 구울 줄 알면 이 고생 안 해도 되겠는데?'
바나나 브레드 하나를 산다고 하는 손님에게는 여러 질문이 나갔다.
구워줄까,
버터에 구워줄까 아님 그냥 구워줄까.
'먹고 갈래, 가져 갈래?'는 기본으로 커피에 대한 질문까지 합하면 다섯 개는 넘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내릴 때) 설탕 미리 넣어줄까?
백설탕 넣어줄까 갈색설탕 넣어줄까?
우유는 더 뜨겁게 해달라구?
우유를 2/3만 넣어달라구?
우유를 2/3만 넣어달라구?
1.5샷만 넣어달라구?
모든 취향을 두 팔 벌려 감싸 안는 듯한 질문이 오갔다. 쌓여있던 바나나 브레드 3종은 거의 팔려나가고 직장인부터 학생까지 어느 하나 길거리에 보이지 않을 때. 이제 아홉시인데 나의 신체리듬은 오후 네시쯤 된 듯한 느낌이 들 때면 겨우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토스트기에 버터를 바른 바나나브레드를 사르륵 구워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끔 바나나 브레드를 일정한 두께로 썰지 못해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토스트기에 까맣게 태워먹기도 했다. 직원 할인조차 없음에도 퇴근길 한 장씩 사서 먹기도 했던 애증의 존재. 그런데 그 이후 시드니 여행을 떠나 카페에서 바나나 브레드를 사 먹으면 그때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왜일까. 새벽 노동과 악덕 사장이 사라져서인가.
오븐을 사자마자 구글에 aussie recipe, banana bread, cafe style 등
온갖 검색을 해가며 열 번쯤 만들어 보았다. 드디어 자리 잡은 레시피. Bake play smile의 레시피이다.
재료
-무가염 버터 120g
-갈색 설탕 200g *바나나의 당도(익은 정도)에 따라 조절 필요
-바나나 4개 *바나나 크기에 따라 조절
-계란 2개 *실온
-밀가루 225g
-베이킹 소다 1티스푼
-소금 1티스푼
-바닐라 익스트랙 1티스푼
160도, 1시간
3 Comments
짧다면 짧은 글인데...그날 아침 바나나브레드와 커피 한잔을 위해 줄을 서 있는 기분이 드는데.. 흡입력 있는 줄거리와 사진은 까마귀 깃털 뽑을 때 들리는 소리처럼 강렬하네요 :)
ReplyDelete까악 이런 인상적인 표현을 남겨주시니 감격스럽네요ㅎㅎ 커피는 어떻게 뜨겁게 드시나요 설탕은 넣어드릴까요..
Deleteㅎㅎㅎ 추운 겨울 그 앞에서 따뜻한 커피와 빵 냄새가 풍기는거 같네. 그 시절 너는 그 섬세한 질문들을 하고 있었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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