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상상해보는 시간
푸르고 파란 풍경이 펼쳐지자 양평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차가 막히는 것이 별로 상관없는 젊은이 둘은 일요일 늦은 오후 여유롭게 이곳을 찾았다. 괜찮은 장소를 알아내고는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데려가는 걸 좋아하는 애인을 따라 나선 길이었다. 밀린 청소부터 빨래까지 쌓인 일을 해내느라 준비가 늦은 나때문에 겨우 세시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 애인은 가이드처럼 설명한다.
"남상미가 하는 카페라는데, 어때? 뷰 좋지?"
우리가 찾았던 교외 카페들 중 최고로 치는 강화도의 토크라피보다 어쩌면 더 좋은 풍경이었다.
"그러게. 어디 산이라도 올라온 것처럼 높고 좋네."
반짝이는 강, 눈이 맑아지는 산. 가까이 보이는 나무들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산들산들, 우아하게도 흔들린다. 카페는 별장처럼 야외를 잘도 꾸며놨다. 저런 예쁜 파라솔은 어디서 샀을까. 리스본 벼룩시장에서 겨우 하나 발견할 듯한 수도꼭지와 자라홈 화보에서 본 듯한 항아리도 이곳 마당에 잘 어울렸다. 잘 가꿔진 꽃들이 가득했다. 곳곳에 마음을 많이 쓴 듯했다.
무엇보다 저 멀리 보이는 집들이 그림같았다. 흙을 닮은 지붕의 낮은 집들이 묵직이 모여있었는데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조화로웠다. 강가에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오는 모텔같은 보라색 건물과 알 수 없는 거북선 같은 형체가 보이긴 했지만 대체로 점잖은 분위기였다. 항상 속초나 강릉 주변이 이런 분위기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저런데 살면 어떨까? 아니면 주말만 지낼 수 있는 별장이 있다면?"
"글쎄. 몇 억쯤 하려나? 엄청 비쌀걸."
젊은이의 특권은 마음껏 상상해 볼 시간이 많다는 것이 아닌가. 요즘들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애인을 앞에 두고 나는 혼자 상상하기로 한다. 저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떨지.
거실의 한 쪽 벽면은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겠지. 보여주기 위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이, 소박한 살림살이에 손때 묻은 보물들이 가득 차 있겠지. 자주 햇빛에 말려지는 이불과 수건, 뽀송한 면 냄새. 창문을 열면 조용한 강가에 새가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겠지. 가까운 화초도 하늘하늘, 반대쪽 창으로 바람숨길이 통하는 공간. 음악이 마음에 맞닿고 책에는 더 흠뻑 빠져들고. 글을 써 내려가는 것도 물 흐르듯 막힘없이. 삶에 더 가까워지는 일상. 여행을 떠날 때면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보금자리. 여행에서 돌아오면 작은 엽서가 깨끗한 벽에 붙여졌다가, 곧 또 다른 그림이 걸릴 거야.
칠천 오백원을 내고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는 동안 실컷 바라보는 풍경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에 마음이 울렁인다. 안소은의 <꿈이로다>
가을 달처럼 놓으리라
별처럼 빛나리라
돌처럼 굳으리라

1 Comments
나 혼자 상상하기로 한다. 너의 심정이 느껴지는군! 때론 초등학교 상상글짓기를 했던 내가 그리워지네 지극히 평범하고 상상이 어려워진 나에게 '너도 상상을 해봐'라고 말해주는거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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