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동아서점을 찾았을 때, 나는 여행 중임을 잊고 다섯 권의 책을 골랐다. 먼 속초까지 와서 무거운 책들을 사게 된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길 습관적으로 광화문의 대형서점을 찾을 정도로 서점을 못 가본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는 방식에 반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여행 중이므로 더욱 본능에 가깝게 책을 골랐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서점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는 점이다. 아주 섬세하고 느리게 적은 듯한 손글씨로.
'뭔가 결정해야할 일이 있나요?'
'요즘 수영을 즐기나요?
'사진을 찍고 싶나요?'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물음들 그리고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책들이 보기 좋게 모여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메리 올리버와 피터 비에리의 책을 처음으로 내밀어 주었기에 그것들을 가뿐히 들고 와 곱씹으며 읽게 되는 것이었다.
동아서점의 존재로 속초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바다에 뛰어들어 바깥소리는 들리지 않게 잠수를 하고 오징어통찜의 진한 맛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책이 가득한 동아서점을 찾는 코스로 속초가 완벽한 여행지로 거듭났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유럽 여행 중 서점을 찾아 마음에 와닿는 책 한 권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읽자마자 마음으로 녹아내리는 우리말로 된 책을 만날 수 있어 국내여행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난 오 년간 네 번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지만 이렇게나 깊은 인상을 갖고 있는 동아서점에 더욱 반하는 일이 생겼다. 바로 동아서점의 김영건 대표가 쓴 독서생활문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를 삼 일 동안 아껴 읽은 이후다. 특히 퇴근길,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읽어 내려간 첫 챕터의 이야기들은 짧지만 너무도 강렬해서 잠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서점에서 일어난 일에서 시작해 책의 구절로 이어지는 작은 이야기들은 내가 동아서점에서 만났던 책들이 모두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특히 '선별의 미학'을 읽으며 가끔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로 아끼게 된 책 <자기 결정>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였다. 저자는 속초 수산시장의 한켠 작은 세탁소 부부가 일하는 태도와 진은영 시인의 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구절과 함께 서점을 세탁소라 가정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기가 없는 책들도 결국 '귀 기울여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는 책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찾아올 당신을 위해, 당신이 맡겨둔 얼룩과 슬픔도 잘 다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보세요. 책들이여, 맡기신 분들을 찾아 얼른 가세요.'
메리 올리버 <긴 호흡>, <완벽한 날들>, <휘파람 부는 사람>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피터 비에리 <자기 결정>,<자유의 기술>,<삶의 격>,<피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루시드폴이 쓰고 이수지가 그린 <물이 되는 꿈>
미하우 스키빈스키가 쓰고 알라 반크로프트가 그린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나는 동아서점에서 날 기다렸을 책들을 떠올렸다. 자유. 자연. 아름다움. 꿈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주변을 밝히는 외관에 뒤편의 주차장까지 단정한 인상을 주는 동아서점을 찾고 싶어졌다. 여행 중임을 기꺼이 잊고 내가 맡겨두었을 책들과 함께 정갈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난 여러 해 사진들을 모아, 동아서점의 풍경 그리고 속초
1 Comments
동아서점 사장님이 이글을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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