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복숭아



나는 느껴지는데, 가을이?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떤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아마도 앞에 있는 여자는 '덥다'고 말했으려나. 나는 입추 하루 전날부터 제법 차가워진 밤 공기에 이미 느끼기 시작했지만, 8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듣게 된 낯선 사람의 문장에 공감했다. 가을이다. 

바람이 선선해지고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어올 때면 뒤늦게 맴맴 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더위를 잘 타는 탓에 매년 여름이면 지친 상태로 7,8월을 견뎌내다가 이 시기가 찾아오면 정신이 번뜩 차려진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는 특히 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일년 중 절반을 나누자면 7월이 그 반의 시작이지만 9월을 맞이하고는 새삼 세월을 알아차리는 듯 하다.  

8월이 끝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복숭아를 한박스 시켰다. 
방 안에 보물처럼 모셔놓고 하나둘 상태를 살피다 냉장고에 두 개씩 넣어두었다. 아마도 올여름 마지막 복숭아일것이기 때문에 제일 달게 익었을 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말랑하다못해 물렁해져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베어 물며 '이때 여행을 떠나야하는건데.' 하고 생각한다. 이맘때 혼자 떠났던 경주가 너무 그리워 휴가를 냈지만 어디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벌써 4년 전 여행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목포-군산-경주 로 떠났던 여행에서 밤마다 혼자 복숭아에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중간에 부산도 잠깐 갔는데 비가 많이 오기도 했지만,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했다. 목포에서는 <행복이 가득한 집> 카페에서 반나절동안 책을 읽고 군산에서는 잊지 못할 공원을 만나고 경주에서는 비오는 날 남산을 올랐다. 그때는 일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외롭게 느껴져 씁쓸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다시는 혼자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아직은 내 공간이 남의 집 에어비앤비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여행을 못떠나는 것이 답답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유명한 음식점 주인마저 성수기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가는 팔월 말. 텅 빈 마을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숙소마저 아무도 없어 혼자서 옥상을 차지하며 음악을 들었던 시간이 그립다.

이틀동안 청소만 했다. 내일은 청소를 일찍 마치고 책을 오래 읽어야겠다. 
저녁에는 조심히 산책을 다녀오고 밀린 생각들을 정리해야겠다. 





목포- 행복이 가득한 집 

























군산- 월명공원









경주- 남산과 대릉원











2 Comments

  1. 한 입 베어물면 과즙이 팡 하고 터지는 복숭아는 한국이 제맛이지. 이곳에서는 흰색 + 자두가 섞인 복숭아가 인기인데 빛깔 좋은 걸 사다가 한참을 물렁하게 만든 뒤 그나마 한국 복숭아와 비슷하게 만들어 먹고 있는 중. 맑고 초록초록하면서 군데 군데 빛이 있는 사진들이 넘 좋댜 열심히 달린다 했더니 블로그의 권태기가 이렇게 빨리 오고 말았어. 급하게 먹느라 체한 걸까 힐링 잘 하고 갑니댜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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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쥬키니도 그렇고 닮은듯 조금씩 맛이 다르구나..! 라임을 수확해서 논알콜 모히또 만들고 타코도 같이해서 먹어봐 :) (블로그 소재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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