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시장 한바퀴



양재꽃시장을 처음으로 꼼꼼하게 둘러봤던 건 3년 전 봄이었다.

초봄이면 각종 허브와 꽃을 사서 정원을 꾸민다는, 당시 근무했던 스튜디오의 실장님과 팀장님을 따라 모종 쇼핑을 나섰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시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예쁜 장면을 핸드폰에 담을 뿐 무얼 사야 하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분은 내가 처음 듣는 이름을 주고받으며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꽃들을 어느 자리에 심을 것인지는 참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한번 심으면 겨울이 오기 전까지 앞마당의 얼굴이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했다. 정원은 그리 넓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모종들이 필요했다. 이렇게 사도 막상 가져가보면 빈 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큰 차의 뒷 좌석부터 트렁크까지 꽃과 허브들을 가득 싣고 나는 겨우 앉아갈 수 있었다. 

딜, 파슬리, 로즈마리, 민트, 바질.. 온갖 허브는 마당에 뿌리내리고 여름이 지나도록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촬영에 허브가 필요할 때면 꽃가위를 들고 앞마당에 가서 따오면 되는 것이었다. 어찌나 잘 자라던지. 한여름에는 너무 자라서 촬영에 쓸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 이후로 마트에서 작은 플라스틱에 담겨파는 허브는 말도 안 되게 비싸게 느껴졌다.

이 경험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기장에 -마당이 없더라도 이제 매해 봄마다 양재꽃시장에 가고 싶다.- 라고 적기도 했으니까. 봄이 시작될 즈음, 사람들이 분주하게 뿌리에 흙이 묻어있는 꽃과 나무를 사 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동감 넘치는 따스한 풍경이었다.

별 계획 없었던 일요일 아침. 
양재꽃시장에 가자는 전화를 받고 어찌나 신났는지 바나나 하나를 뚝딱 먹고 집을 뛰쳐나왔다. 아직 날이 더워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 못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식물 둘을 데려왔다. 꽃시장을 갈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많은 것들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존재는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 조금이라도 눈에 어긋나는 아이와는 인연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신나게 궁둥이를 흔드는 웰시코기와 어느 집에서 키우는 멋진 고양이를 구경하며 꽃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새로운 식구- 블루마운틴 선인장과 황칠나무.
선인장으로 멋지게 꾸며놓은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반해서 데려왔다. 실제로 보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컬러다. 통통한 잎들이 힘있게 하늘로 솟아있고 만져보면 스웨이드처럼 부드럽다. 물은 한달에 한번씩 종이컵 두 컵씩만 주면 된다고 한다. 갈색의 플라스틱 화분 상태로 구입했는데, 황칠나무를 구입한 집 사장님이 이 화분을 추천해주셨다. 이렇게 길게 높은 화분으로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약간 와인 컬러의 토분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바꿔보니 정말 찰떡이었다. 사장님은 -속이 시원하다- 라고 했다.

시장을 돌면서 줄기가 긴 식물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집이 넓어야 어울릴 것 같은 가지가 어마어마하게 옆으로 뻗은 올리브나무도 멋있었지만- 여백의 미가 물씬 풍기는 친구들이 유난히 멋있어 보이더라니. 결국 만나게 된 황칠나무.
사장님이 너무 예쁜 화분에 담아 놓은 상태였다. 키우기 어떠냐는 질문에 - 햇빛을 좋아하고. 물은 거의 방치하듯 10일에서 보름에 한번씩 주면 된다-고 했다. 
다른 집에서 인위적으로 가지를 꼬불꼬불 만들어놓은 친구들도 봤는데, 이 친구는 균형이고 불균형이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마음에 들었다. 손바닥같은 잎이 아주 적절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집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로즈마리와
일터에서 에어컨 바람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데려와 분갈이한 테이블야자와 고무나무.
그리고 집들이 선물로 받았는데 어쩐지 힘을 못내고 있는 화분.
여기에 두 식물이 더해지니 갑자기 식구가 확 늘어난 기분이다. 앞으로 햇빛샤워와 물주기 임무를 더 잘 해내야겠다는 가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잘 키우다가 또 시장을 찾아야겠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5 Comments

  1. 와ㅎㅎㅎㅎ 화분 정말 잘 골랐다! 어느 새 식물원이 되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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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 시작이야 ^^ 식물박사가 될테야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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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공간과 식물에 어울림을 생각하니 멋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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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옷 고마워 :) 아기나무를 함께 키워보는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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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아기나무 ? 뭐가 좋지 ? 추천해줄래요?? 난 겐차야자랑 몬스테라 3년간 키우는 중인데 몬스테라는 죽어버렸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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