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
마종기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천문학회에서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과 애리조나 대학의 천문학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설파했다. 천만 광년이나 천억 광년 전에 태양계는 물론, 우주계는 물론, 그 이상의 전체의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
나는 예과 시절에 식물학을 좋아했다. 크고 작은 꽃과 나무와 풀잎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고, 식물 채집과 표본은 언제나 학년에서 으뜸이었고 위안이었다. 30년이 더 지난 요즈음, 나는 그 풀잎이나 꽃의 이름을 거의 다 잊고 말았다. 멀리 살고 있는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많이 기억해낼 수가 없다. 내 이름도 달라져버렸다. 아무도 내 이름을 어릴 적의 친구들같이 불러주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은 스페인의 시인 히메네즈는 말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에 미국을 택한 나는, 자유를 얻은 대가로 내 언어의 생명과 마음의 빛과 안정의 땅을 다 잃어버렸다. ㅡ내게도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이 있었을까.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 빅뱅 이후로 계속해서, 2/3는 차고 어두운 것, 1/3은 뜨겁고 어두운 것이 섞여서 공간의 안팎을 메우고 있었다. 차고 어두운 것은 빛이 없었기 때문이고, 뜨겁고 어두운 것은 중성자 계통 때문이었다.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의 분포는 컴퓨터로 계산되어 이달 목요일판에 발표될 것이다.
그리스와 터키에도 많은 한국 사람이 서로 딴 말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지중해의 동쪽 변경 사이프러스에도, 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도 한국 사람이 닻을 내리고 살고 있었다. 북해의 북쪽 끝, 노르웨이에서 북쪽 바다로 하루종일 나가 있는, 북위 70도 근처의 작은 섬나라, 인구 7만의 수도 레이커빅에도 한국 식당이 있었다. 화산과 빙산에 싸인 섬에서 김선생님 댁은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말했다. 우리말일까요 뭐.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요. 무엇이건 오래 그리워하면 그게 다 사방 바다로 밀려나가 한정 없이 저런 파도 소리를 만들어낸대요. ㅡ파도가 아파하는 소리 너무 커서 밤잠을 설치다가, 나는 사흘 만에 그 섬을 떠났다.
예정에 없던 항해였을까. 내 바닷길은 처음부터 차고 뜨겁고 어두웠다. 눈물이 뜨거웠다. 이제 험난한 길을 열고 목요일의 우주가 도착할 것이다. 한 처음에,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이 있었다(한 처음에, 그 전부터,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보이지 않았다.
-마종기시집 <이슬의 눈>
복숭아와 화이트 와인이 가장 맛있는 여름을 사랑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는 괜찮은 와인을 마셔보고는 두병 더 사왔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저녁에 씻은 후 한잔씩 마신다. 금방 물방울이 맺히는 와인병 멀찍이 초를 켜고 간단한 저녁을 슬슬 준비한다. 바로 떠오르는 마종기 시인의 시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
저녁마다 토마토나 간단한 파스타만 먹다가 복날이라고하여 장어를 두마리 주문했다. 삼일 내내 장어를 먹었더니 다음날 아침이 피곤하지 않았다. 반마리씩 소금구이로 레몬만 뿌려먹었는데도 맛이 좋았던 장어는 훌륭한 저녁 메뉴였다.
매우 아끼는 포도 문양의 빈티지 고블렛을 하나 깨먹은 것 말고는- 7월을 잘 넘겼다.
1 Comments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의 시가 제 마음에 몹시 와 닿네요. 옹니마농님의 블로그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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