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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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빼기 위해 반 눕자 내 손에는 보송하고 통통한 인형이 쥐어졌다. 노오란 오리였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치아 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보다도 내가 살아온 연도와 개월 수 였다. 아기에 대해 물어볼 때만  붙어 돌아오는 줄 알았던 개월 수. 여기 서른 일곱 해와 한 달을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 이를 빼기 위해 오리 인형을 안고 누워있다. 

눈은 곧 천으로 가려졌다. 다리에 소름이 몇 번 돋았고 그때마다 치앙마이의 호시하나 빌리지를 떠올렸다. 본능에 가까운 속도였다. 내가 세 밤을 잤던 작은 코티지. 첫 만남은 해가 바닥에 가까워지는 시간대였다. 창문 틈으로 들어와 흰 벽에 나무 그림자를 그리며 흔들리던 빛. 황금빛은 부서지며 환영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중이었다. 

새하얀 침구는 매트리스에 대고 다린 듯 빳빳하게 펼쳐져 있었다. 소박하고 깨끗한 잠자리였다. 낮은 베개와 얇은 이불을 보며 죽음을 떠올렸다. 편히 눈 감을 자리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가 지저귀고 개구리가 울어대는 요란한 소리 속 그 자리가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평화란 그 침대다. 내 발로 멀리도 찾아 들어간 시골 속 작은 코티지의 정돈된 침대. 그 정반대에 눕혀 무엇인지도 모를 도구로 내 한쪽 턱을 지지대 삼아 다른 쪽의 턱에 숨은 사랑니가 당겨지고 있었다. 눈을 가려준 것처럼 귀도 막아주었으면. 나는 치료가 끝나면 돈까스를 사준다는 보호자없이 스스로를 달랬다. 

까만 도화지에 그 먼 곳을 하나하나 그려냈다. 겉이고 속이고 시끄러운 사람이 있다면 손 잡아끌고 가고 싶은 곳. 참아내기 가장 힘든 
순간엔 반드시 다시 데려가겠다며, 자신에게 약속했다.

“비염이 있으신가 봐요. 저와 같네요. 숨쉬기 힘드셨죠? 잘 끝났어요.”
저녁 시간대 라디오 디제이처럼 나긋나긋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말 못 하는 사람처럼 끄덕였다. -술은 안되고 죽을 먹어요.

죽. 아침마다 조용한 사람들이 차려주던 태국식 죽은 두 번 먹었다. 종이에 적어 내면 수영장 옆이나 코티지 앞으로 가져다 주었던 음식들. 과일이 올라간 요거트, 버터플라이피와 채소 튀김, 면요리, 돼지고기 구이와 커리, 감자와 레몬그라스 튀김, 점심부터 마시던 맥주와 결국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와인. 허브 사우나와 함께 즐겼던 코코넛 스무디. 남은 커녕 자신도 속이지 못할 정직한 눈빛에 안심했던 음식들이다. 눈만 마주쳐도 안다.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인지. 수줍어하며 작게 웃는 얼굴은 따라 웃기 쉬웠고 마음까지 닿았다. 말없이도 통하는게 눈빛이고 웃음이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반나절은 누워서 울었다. 첫 끼는 흰 죽을 끓이고 두 번째는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와 당근, 고수를 넣어 죽을 만들었다. 당근을 작고 예쁘게 썰었다는건 마음이 담겼다는걸 안다. 국물이 자작하던 태국식 죽을 아침으로 먹고 낮잠은 두 번씩 청하며, 하루 세 번은 풀에 누워 둥둥 떠있고 싶은 마음이. 






















































































두 귀가 다 잠기도록 물에 누워
바라본다 새의 배
날갯짓을 하다 잠시 펼치기만 할 때를

세상 소리 사라지고 선명해지는 눈앞
구름 위의 구름
나뭇잎 끝에서 노는 나비
부지런히 지나가는 벌들
보인다 저 멀리까지

새의 배를 마주하며
숨이 차지 않게 
힘을 빼고 
천천히 물길 따라 살랑살랑 흔드는
내 팔과 다리

저 여기 있어요 
치앙마이 어느 시골의, 수영장에
쉬고 있어요 힘을 빼는 법
비로소 알 것 같은 이때

저 여기 있어요
나뭇잎 위의 새, 새 위의 구름, 구름 위의 구름
바라보며 매일 헤엄치기
거북이처럼 소금쟁이처럼
나뭇잎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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