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해서 좋아하던 백화점이 스크린으로 뒤덮였을 때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여전히 화면은 수시로 뒤바뀌며 뭔가를 내비쳤다. 삼 년 전이었나. 그때의 크리스마스가 딱 좋았다. 점점 새로운 것을 얹고 또 얹더니 이제는 알아볼 수가 없는 얼굴이 되었다. 변함없이 잔잔한 불빛을 밝히는 명동성당을 보면 눈이 씻겨진다.
옛 건물을 좋아하는 나는 그 바로 옆 건물에 관심이 갔다. 1935년에 지어진 건물은 오랜 풍파를 겪고 오늘 새로운 날을 맞았다고 했다. 문에는 이 시대 최고의 이름이 붙었다. 샤넬.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중국어와 그들의 손에 들린 쇼핑백들. 쇼핑하기 참 좋은 봄비 내리는 날이다. 곧 엘레베이터가 담담하게 날 반긴다. 쉽게도 부서지는 서울 한복판에 기특하게 살아남았구나. 한참을 쳐다보다 올라가는 스위치를 눌렀다. 안은 반짝 빛이 난다.
4층 안쪽으로 들어서자 건물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무나 볼 수 없었을 금고 주변까지도 오랜 이야기가 쓰여있다. 분수대만은 여전한 1920년대 로터리 사진과 1960년대 서울 안내도. 아파트로 뒤덮이기 전 서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2025년의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왜 자꾸만 옛 것에 마음이 갈까. 낮고 고요한 장면을 지키고 싶을까.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길- 숭례문과 덕수궁을 지나 광화문을 바라보며 교보문고로 들어서는 세종대로를 천천히 걸었다. 길을 따라 따뜻한 등불이 걸려있고 광장에는 커다란 탑 모양의 등이 우뚝 서있다. 딱 걷기 좋은 밤공기에 꽃향기가 떠다니는 4월, 이 길의 모습.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서울의 모습만은 여전하다.
비에 젖은 돌담길의 운치, 청계천 지날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발걸음 멈추는 교보문고 앞 벚꽃나무. 지금의 장면이 옛 것이 되기 전까지 조용히, 실컷 눈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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