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어김없이 찾아온 두통으로 설 연휴를 시작한다. 집에 가기 전 살살 아프던 머리는 아무리 잠을 청하고 심호흡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가 해 준 떡만둣국은 만두를 덜어내고 겨우 몇 숟가락을 떠먹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그 어떤 음식도 맛볼 수 없었다. 조금 나아졌을 때 우연히 찾은 낯선 집에서 먹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두통이 잊힐 만큼 속이 뒤집어졌다.

가벼운 몸으로 돌아와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술도 커피도 마시지 못할 상태일 때 찾는 건 속이 편한 차와 죽뿐이다. 물을 끓인다. 차를 우린다. 이탈리아 어느 주간지에 이 년간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을 펼친다. 저자는 로그인 되어있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에게 마흔네 통의 편지를 남기고 2017년 1월,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쉬지 않고 숏츠를 돌려보는 못 볼 꼴은 피한 채. 코로나 이전에.

추위를 피해 잠깐 여는 것이 아니라 오후 내내 창문을 마음껏 열어두었다. 이불을 햇볕에 널어두고 책들을 기분 좋게 쌓아두었다. 부엌 쪽으로 들어오던 해는 벽을 타고 작업방으로, 테이블로, 현관으로 옮겨갔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 주전자와 개나리, 백자 합이 반짝거렸다. 식은 차를 곁에 두고 해가 질 때까지 마셨다. 곧 눈썹달이 떴다. 


남기고 싶은 마음이 분명한 책들을 빼고 모두 정리하기로 한다.

옷보다 수건, 수건보다 기분 좋은 이불 빨래

새로운 책들 - 보물같은 선생님들

속이 편한 저녁


오십 분 공연을 몇 번을 돌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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