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140-1

삼청동 140-1


후지필름 포트폴리오 수업의 마지막 날, 수업 전 틈을 타 그릇을 구경하러 이예하yiyeha 라는 공간을 찾았다. 삼청터널을 지나자 생각보다 금방 도착해버린 삼청동 140-1. 2층에 위치한 이예하가 문을 열기까지 삼십분이 남았지만 더위를 피해 별생각 없이 일층에 들어섰다.

아주 오래전 할머니 댁이 떠오르는 녹색 문은 듬직한 돌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 길을 몇 번이나 지나갔을까. 그럼에도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이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가장 좋았던 건 천장에 돌아가고 있던 실링팬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바람이 후덥지근한 날씨를 뚫고 주변을 왕왕 맴돌았다. 그 미세한 서늘함에 누가 부채질이라도 해준 듯이 목 뒷덜미가 금세 식었다. 그리고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는 바닥, 계단이 두 번째로 좋았다. 어디서부터 새로 더한 건지 알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입혀진 세월이 그대로 다가왔다. 그 시작은 바닥에 새겨져있던 1971년이었을까? 이곳은 집이었을까, 누가 살았을까, 이곳은 마당이었을까.. 

그렇게 혼자서 상상해보는 그 몇 분이 요근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은 1957년에 처음 지어지고 그 이후 사진관, 2019년까지는 주택으로 쓰였다고 한다. (링크)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 삼청동의 모습은 어땠을지, 또 그때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왜이렇게 재미있는걸까.

202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태어났고 현재는 이예하, 도예가의 작업실, 건축 그룹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옛날의 모습을 적절히 살려두어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시간 여행을 떠나듯 마법 같은 공간으로 남겨진 것은 1957년 첫 주인에게도, 처음 방문해 본 나에게도 큰 기쁨이다.

삼십분을 기다려 찾은 2층의 공간도 예상만큼 인상적이었다. 차분한 공기에 강렬한 빛이 드는 천장이 있었다. 잘 꾸며진 공간. 그렇지만 일층의 공간이 없었다면 이층이 어떻게 느껴졌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훗날 나의 작업실은 이곳 일층의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












































햇빛을 품은 그릇은 도예당 @doyedang 











다음엔 저 집에 가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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