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보고 온 풍경
한 점 하늘 김환기
호암미술관
굽이굽이 먼 길을 달려 주차장 입구에 다다르니, 우산을 쓰고 찌푸린 얼굴로 대뜸 '사전 예약제라 다시 돌아가서 예약부터 하고 오시라'는 직원의 말투도
사진으로 남기려다 곧 포기하고 도록을 사기로 결심-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기념품 가게에 어느 미래도시처럼 '큐알로 찍어 온라인샵에서 사시라'고 써있던 안내도
희원의 끝 벅수들이 가득한 길을 걸으며 모두 훌훌 털어버린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위의 장면을 첫인상으로 재배치하고, 수수한 들꽃 사이에 어떤 표정들을 보여주던 벅수들을 마지막 인상으로 남긴다.
마음에 들어 온 벅수 한 쌍
환기미술관에서 보고 적어놓았던 어느 구절이 다시 다가왔다. 55세 나이 때 일기다. 오십이 넘어 먼 땅으로 건너가 새로 그림을 그릴 때.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 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
1967.10.13
김환기 화백이 가족들에게 보낸 손편지를 보며 우는 여자를 보았다. 손수건을 쥐고서. 필체를 보며 그 시절을 상상해본다. 전시의 마지막에 보았던 회색의 점들처럼 힘없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마지막을 짐작하듯 일기장에 써 내려간 그 필체를 떠올린다.
푸르름도 희망도 모두 한때
그래서 더 절실히 자유로워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