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태어남'을 축하할 일이 많다.
한 여름에 태어난 내가 특히 겨울에 태어난 사람과 인연이 깊어지는 까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그래왔다. 태어남을 축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카드, 포장된 선물, 케이크, 디저트까지 맛있는 식사, 함께 보내는 시간,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 사진 몇 장.. 온전히 내가 준비하는대로 보내게 될 특별한 날이라는건 항상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상대를 위해 고민이 시작되지만 곧 나에게도 경험될 시간이고 결국 함께 보내며 완성되기 때문이다.
1월,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의 생일이었다.
아끼는 사람을 대접하고 싶을 때 가보고 싶었던 밍글스를 예약하고 생일 축하 레터링 서비스를 부탁했다. 가기 전 몇 장의 사진을 찾아보고는 -멸치국수를 추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 말고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평소 투철한 절약정신으로 귀감을 주는 그 사람이 금액을 떠나 식사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나중에는 꼭 디너를 가봐야지 하는 '숫자'와 관련된 생각이 컸다.
밍글스에 도착해 햇살이 따뜻한 자리에 친절히 안내되었을 때, 푸드스타일링 일을 처음 따라갔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이는 꽃과 그릇, 커트러리, 투명한 물잔과 와인잔에 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분하고 간결하고 예쁜 것들. 가장 좋았던 건 앞 사람과 내 앞에 동시에 놓여지는 요리들이었다. <I AM LOVE> 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도 같았는데 햇빛이 조명처럼 요리를 밝혀주었다. 눈을 마주치고 듣는 설명도 좋았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처럼, 요리를 마주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가 앉은 자리는 열었다 닫히는 주방을 등지고 창밖을 마주하고 있었다. 앞 사람은 틈틈이 보이는 분주한 주방 속 모습이 영화같다고 말했다. 창 밖의 풍경처럼 천천히 흐르는 여유를 위해 철저히 계산되고 움직여질 사람들이 뒷통수 너머로 느껴졌다. 수고로움으로 완성되는 이 멋진 시간을 더욱 만끽하고 싶었고 결국 세 잔의 와인과 네 접시의 디저트까지 완벽히 즐겼다.
두시간이 넘는 식사를 마치며 빈 자리의 주변을 돌아봤다. 곱게 접혀있는 듯한 처음 모습도 예뻤지만 사람들이 떠난 흐트러진 테이블이 더 예뻐보이는건 왜일까. 아직 세시밖에 되지않았지만 더 뜨겁고 진해진 햇살을 뒤로 하고 달항아리에 멋지게 꽂힌 동백꽃을 마지막 인상으로 남겼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서 나도 함께 축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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