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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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머리를 비우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몇개 고르는 것이었다.
오븐을 사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뜨끈한 피쉬파이와 바나나브레드를 만들기로 했다. 장을 보는 일부터 즐거웠으나 결론적으로, 바나나브레드는 꺼내다 엎었고 피쉬파이는 보기 좋은 색이 나오기 전에 오븐에서 꺼내 먹어버렸다. 선물 받은 소세지를 후루룩 굽고 샐러드를 뚝딱 만들어 같이 호로록 먹고 말았다. 남은 음식을 대충 바깥에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남은 화이트 와인과 함께 아침 열한시에 깔끔하게 비웠다. 

나의 2021년 12월 중 가장 가볍고 행복한 주말이었다. 




12월 스물여섯번째 날 아침





2022년을 위해 더 비워둘테다

























겨울다운 추위가 시작된 어느 금요일 


나는 두번째로 가 본 동네를 막 떠나 익숙한 고속터미널역에 내리던 참이었다. 눈이 시렵도록 차가워진 날씨에 유난히 공기는 맑았고 도시 전체가 반짝였다. 

'황금빛 햇살이 꿈처럼 반짝인다.' 아침부터 읊조린 혼잣말이 자꾸만 머릿 속을 맴돌았다. 난 거의 한 달동안 연달아 좋은 꿈을 꿔왔다. 그 날의 기분마저 '쨍했다'고 할 수 있는데, 겨울의 공기 속 햇빛만큼 꾸밈없이 맑고 선명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어느 면접을 떠올렸다. 서른살이었다.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인연으로 ‘같이 일해볼래?’라는- 내 인생 두번째 실장님의 한 마디에 이끌려 생전 처음 보는 동네에 용기있게 발을 내딛었다. 면접 전 추위를 피해 잠시 들른 카페에서 남겨둔 사진 하나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직접 만든 파란 천가방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마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실과 천으로 만든 무언가였다. 새로 반해버린 일- 테이블 위를 보기 좋게 담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동시에 실장님의 딸과 강아지의 밥까지 챙겨야하는, 신데렐라의 어린 시절 같은 몇개월이 펼쳐졌다.


“찾아봤냐~?”

제주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나가다 본 강아지 모자를 인터넷으로 찾아봐달라고 몇 주 째 걸려오는 전화였다.

“아빠 나 오늘 면접봤어요. 근데 좀 멀어서 어떡하지?”

“그랬냐~? 행운을 빈다~!”


보통의 이야기는 생략된 채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행운을 빈다. 잘해봐라.

마을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이동하기 전에 통화는 끝이 났다.


“괜찮아. 살다보면 다 하게 되어있어.”

며칠전 엄마에게 주절 주절 늘어놓은 나의 말들이 한 마디로 정리되던 통화와 닮아있었다. 속이 시원해지는 지난 꿈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인생은 한 번이라는 말도 했다. 

“그냥 각자 다 하고 싶은대로 사는거야.”


의류학도일적 존경하는 마음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까지 했던 어느 디자이너의 패밀리세일 장소에 내려 진한 블랙의 윤기가 좋은 코트를 하나 샀다. 좋은 코트를 만난 건 기억에 남을만큼 오랜만이었다. 묵직한 코트를 들고 곧 도착할 오븐을 맞이하러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기 전 마주한 건물에 파란 하늘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겨울이 그래서 좋다. 차가운 공기에 정신은 맑아지고 많은 것들이 간단해진다.

단단한 코트를 갖춰입고 새로운 길로 나설 수 있는 용기, 겨울의 빛과 닮았다.


입김을 뿜어내며 언덕을 올라올 때 저멀리 오븐을 실은 트럭이 보였다.  

먼저 문을 열고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언덕을 뛰어올랐다. 







































틀 FRAME 
한 칸, 한 평, 나 만의 절대공간
JJ중정갤러리
/박찬우 개인전

정겨운 개나리가 담을 따라 멋지게 늘어져있던 동네의 어느 주택도 얼마전 빈 집이 되었다.
아마도 이방인인 나는 모를 이야기가 부지런히 펼쳐지고 있는 듯한 성북동에는 오래된 나무와 집들이 하나둘 허물어지고 똑같이 생긴 신축 빌라들이 지어지고 있다. 그런 집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내부까지 모두 닮아있었다. 마치 같은 건축업자가 지은 것 처럼.

지난 봄에 사라진 집 앞 은행나무 두 그루가 더욱 그리운 가을이었다. 까치가 우는 소리 대신 들리는 공사 소음을 견디느라 창문 한번 시원하게 열어두지 못했다. 어쩌면 이 동네를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갈 곳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저녁마다 '건축탐구 집'을 찾아보며 환기한다. 바람이 잘 통하고 자연과 가까운 집. 은퇴 후 찾아가는 이상의 집들과 성북동은 반대로 가고 있다. 물론 저 먼 높은 곳의 성북동은 변화없이 고요하다. 

연차를 낸 평일 아침, 전시에 대한 아주 짧은 내용만 읽고 단숨에 이끌려 중정갤러리에 다녀왔다.
평창동 골목 끝에 있는 갤러리는 걸어 올라가는 길부터 전시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멀리 보이는 큰 창을 바라보는 순간 안의 공간이 펼쳐지는 느낌. 나무를, 붉은 벽돌의 지붕을, 저 멀리 산을 한 폭에 담은 창문은 딱 그곳에 어울렸다. 시원하게 펼쳐질 한 쪽의 창문은 더욱 근사했다.

작가는 숲, 바다, 들판, 도시에 놓인 한 평의 흰 박스를 멀리서 담아냈다. 흰 박스는 정육면체로 보이기도 했지만 한 쪽이 뚫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마지막으로는 두 면을 열어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을 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한 평의 작은 공간이 인간이 소유한 집처럼 보였고 편히 쉴 방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결국 내면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 마음가짐, 상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평의 마음에서 바라보는 무한대의 수평선- 곧 무한한 마음에서 그려지는 무한한 힘. 

한 평의 둥근 샘물 위, 길게 매달린 돌이 시계 추처럼 움직였다.
놀랍도록 잔잔한 파장이 가끔 나타나 한 평 전체로 퍼졌다, 다시 사라졌다.
거의 움직이지 않다시피 움직이는 제 속도의 돌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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