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잠잠하게

묵묵히
: 말없이 잠잠하게

묵묵히 가을이 왔다. 집 앞 우거진 은행나무에서는 하나둘 은행이 떨어지고, 생각보다 천천히 은행잎으로 물들고 있다. 떨어진 은행에서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봤다. 나도 떨어진 은행을 피해가지만 얼굴을 찌푸리기까지 한 적은 없었다. 매년 가을마다 은행을 줍고 씻어내 엄마에게 전해주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거나, 외할아버지댁 앞 거대한 은행나무를 그려보거나, 팬에 구워먹으면 맛있겠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은행이나 밤, 배추까지도 버려지는걸 종종 봤다.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겠지만 시골에서는 그 모든것들이 '아깝다'고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밭을 외면하게 된 외할아버지는 아깝지 않다며- 올해 김장까지 생략하자고 말씀하셨다. 냉동고에 넣어 놓고 아껴먹던 은행이 더욱 귀해져서인지 종종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을 보면 그 생각이 난다. 

묵묵히 제 몫을 지킨다는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각자의 자리를 잘 해낸다는게 간단하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 퇴근 후엔 식탁에 말려놓은 꽃들을 멍하니 보면서 최대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든다. 수요일이 넘어가면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가 다시 주말 아침. 커피를 내려먹으면서 또다시 모든게 괜찮아지는 식이다. 추위를 타지않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지만 환기를 시키려 창문을 열때면 뭐라도 걸쳐야하고, 의자에는 안입는 모직 옷으로 온기를 더해주어야하는 시월. 조금만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말려지기 전, 꽃.
친구가 결혼식장에서 가져다 주었다. 









4 Comments

  1. 마져 그런 것 같아, 묵묵히 해내는 그것 . 찬바람 조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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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 유하와 함께하는 첫 시월.! 따뜻하게 보내련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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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은행을 밟고 인상을 썼던 일인... 반성하구 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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