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2020년 여름은
-옷과 화장품을 버리고 책과 청소기를 얻은 계절
이사하고 6개월.
고정비용이 늘어나면서 바뀔 수 밖에 없는 소비패턴에 여전히 적응 중이다. 우선순위를 조금씩 바꿔가며 관리하고 배워나가야 한다. 혼자 처음으로 보낸 여름은 아껴야하는 카테고리를 철저히 지키면서(옷,화장품,술) 책을 원없이 사서 읽었고 청소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게 기억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작업방에 들어올 때마다 테이블에 놓일 아이맥을 환영처럼 상상한다.
시원하게 비워낸 기초 화장품들. (+깨져서 버리는 파이어킹 믹싱볼)
간절했던 청소기가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이제 나의 취미는 청소입니다.
애정하는 두 곳
노르딕파크
http://www.nordicpark.co.kr/
노르딕 파크는 북유럽 빈티지 가구,조명,그릇을 다루는 곳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김포에 위치해있다. 처음 김포 매장을 찾았을 때 너무 놀랐던건 북유럽 그릇들이 말그대로 -쌓여있어서.
예쁜 테이블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아직은 범접하기 어려운 가격대여서 그릇을 주로 구경했다. 시즌마다 한번씩 세일을 하는데 그때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몇번 구매해보았다.
보통 다른 곳들은 빈티지를 다룸에도 민트급만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노르딕파크는 특별히 하자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따로 표시하지 않는 편이다. 받아보고 스크래치나 크렉을 발견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기에 나는 크게 불만이 없지만 많이 예민한 사람들은 직접 오프라인으로 확인해보고 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hoganas, gustavsberg, rorstrand 제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표님이 덴마크로 출장을 자주 다녀오시는 것으로 보이며 업데이트가 대량으로 올라온다. 북유럽 빈티지 소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유앤웬즈데이
유앤웬즈데이는 인스타그램, 사이트를 보는 것 만으로도 눈이 즐거워 팬이 되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구입하게 된 것은 <미드 썸머 바스켓> 과 유앤웬즈데이에서 제작하는 하트 타투가 그려진 컵 이다.
<미드 썸머 바스켓>은 세가지 아이템이 랜덤으로 오는 선물 꾸러미이다. 가격은 40,000원.
설명은 아래와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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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청명한 빛, 다정한 바람결을 닮은 세가지 빈티지 제품으로 꾸려지는 써머바스켓입니다. 유앤웬즈데이에서 평소에 소개 되고 있는 제품들과 같은 흐름을 가진- 여전히 빛나는 시간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빈티지 테이블웨어 및 소품들이 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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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기심에 주문을 하고 꽤 오랜시간을 기다렸다. 보통 택배를 기다리면서 배송조회를 하지않는 편인데, 한달정도 기다리다가 사이트 게시판에 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 다음날 도착했다.
유앤웬즈데이 제품들과 같은 흐름을 가졌다면 어떤 것이 와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기대보다도 훨-씬 좋아 만족스러웠다. 조개 모양의 작은 그릇과 서빙용으로 보이는 큰 포크,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컬러인 파란 유리의 육각모양 아이템까지. 내가 구입했지만 선물 받은 기분이 들어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어텀 바스켓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8월 말에 마감되었다.
윈터 바스켓은 놓치지 말아야겠다.
올리브 화기는 원래 뚜껑까지 있는 캐서롤이다. hoganas/ 노르딕파크 구입.
타투같은 하트 스템프와 레드 림이 인상적인 컵은 1950년대 빈티지를 모티브로 제작된 유앤웬즈데이 제품.
유앤웬즈데이에서 한달만에 도착한 미드썸머 바스켓
모두 마음에 들었다. 하트.
그릇장에 안착.
양재꽃시장을 처음으로 꼼꼼하게 둘러봤던 건 3년 전 봄이었다.
초봄이면 각종 허브와 꽃을 사서 정원을 꾸민다는, 당시 근무했던 스튜디오의 실장님과 팀장님을 따라 모종 쇼핑을 나섰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시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예쁜 장면을 핸드폰에 담을 뿐 무얼 사야 하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분은 내가 처음 듣는 이름을 주고받으며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꽃들을 어느 자리에 심을 것인지는 참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한번 심으면 겨울이 오기 전까지 앞마당의 얼굴이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했다. 정원은 그리 넓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모종들이 필요했다. 이렇게 사도 막상 가져가보면 빈 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큰 차의 뒷 좌석부터 트렁크까지 꽃과 허브들을 가득 싣고 나는 겨우 앉아갈 수 있었다.
딜, 파슬리, 로즈마리, 민트, 바질.. 온갖 허브는 마당에 뿌리내리고 여름이 지나도록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촬영에 허브가 필요할 때면 꽃가위를 들고 앞마당에 가서 따오면 되는 것이었다. 어찌나 잘 자라던지. 한여름에는 너무 자라서 촬영에 쓸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 이후로 마트에서 작은 플라스틱에 담겨파는 허브는 말도 안 되게 비싸게 느껴졌다.
이 경험이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기장에 -마당이 없더라도 이제 매해 봄마다 양재꽃시장에 가고 싶다.- 라고 적기도 했으니까. 봄이 시작될 즈음, 사람들이 분주하게 뿌리에 흙이 묻어있는 꽃과 나무를 사 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동감 넘치는 따스한 풍경이었다.
별 계획 없었던 일요일 아침.
양재꽃시장에 가자는 전화를 받고 어찌나 신났는지 바나나 하나를 뚝딱 먹고 집을 뛰쳐나왔다. 아직 날이 더워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 못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식물 둘을 데려왔다. 꽃시장을 갈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많은 것들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존재는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 조금이라도 눈에 어긋나는 아이와는 인연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신나게 궁둥이를 흔드는 웰시코기와 어느 집에서 키우는 멋진 고양이를 구경하며 꽃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새로운 식구- 블루마운틴 선인장과 황칠나무.
선인장으로 멋지게 꾸며놓은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반해서 데려왔다. 실제로 보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컬러다. 통통한 잎들이 힘있게 하늘로 솟아있고 만져보면 스웨이드처럼 부드럽다. 물은 한달에 한번씩 종이컵 두 컵씩만 주면 된다고 한다. 갈색의 플라스틱 화분 상태로 구입했는데, 황칠나무를 구입한 집 사장님이 이 화분을 추천해주셨다. 이렇게 길게 높은 화분으로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약간 와인 컬러의 토분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바꿔보니 정말 찰떡이었다. 사장님은 -속이 시원하다- 라고 했다.
시장을 돌면서 줄기가 긴 식물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집이 넓어야 어울릴 것 같은 가지가 어마어마하게 옆으로 뻗은 올리브나무도 멋있었지만- 여백의 미가 물씬 풍기는 친구들이 유난히 멋있어 보이더라니. 결국 만나게 된 황칠나무.
사장님이 너무 예쁜 화분에 담아 놓은 상태였다. 키우기 어떠냐는 질문에 - 햇빛을 좋아하고. 물은 거의 방치하듯 10일에서 보름에 한번씩 주면 된다-고 했다.
다른 집에서 인위적으로 가지를 꼬불꼬불 만들어놓은 친구들도 봤는데, 이 친구는 균형이고 불균형이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마음에 들었다. 손바닥같은 잎이 아주 적절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집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로즈마리와
일터에서 에어컨 바람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데려와 분갈이한 테이블야자와 고무나무.
그리고 집들이 선물로 받았는데 어쩐지 힘을 못내고 있는 화분.
여기에 두 식물이 더해지니 갑자기 식구가 확 늘어난 기분이다. 앞으로 햇빛샤워와 물주기 임무를 더 잘 해내야겠다는 가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잘 키우다가 또 시장을 찾아야겠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