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러가마트에서 만난 아스파라거스의 컬러
살고 싶었던 연희동.
집을 알아볼 때 자주 검색해보던 동네 3순위 안에 드는 연희동이다.
사실 나에게 연희동이란 신비로울 정도로 새롭기만 한 곳이었다. 그저 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쉽게 마음이 흔들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건 각종 허브와 과일이 가득한 사러가마트와 맛있는 카페, 빵집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조건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차지했다.
결국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고 연희동과의 연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연희동은 가끔 일때문에 또는 약속이 있을 때만 찾는, 여전히 잘 모르겠는 동네로 남았다. 더군다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고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길과도 방향이 달라 여유있게 돌아본 적이 손에 꼽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아침.
약속덕분에 연희동을 찾을 기회가 왔다.
몸은 무겁지만 오랜만에 오자크래프트와 매뉴팩트커피, 사러가마트를 가 볼 생각에 마음이 즐거웠다.
오자크래프트 쇼룸은 열두시에 오픈이라, 우선 사러가마트를 찾아 싱싱한 야채와 와인들을 구경했다.
매뉴팩트커피에서 원두를 한 팩 사고, 카푸치노를 한 잔 얻어먹는다. 최근 마신 카푸치노 중 가장 맛있었다.
장미부터 이름 모를 나무까지 담벼락에서 싱그러움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골목길을 지나, 폴앤폴리나에 도착한다.
광화문 폴앤폴리나를 찾을 때마다 마치 스님과 같은 인자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던 직원분이 떠올랐다. 연희동점 역시 전혀 서두르는 법이 없이 기분좋게 맞이해주는 직원분이 계셨다. 뒤로는 차분하고 깨끗하게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치아바타를 포장해서 나왔다.
오자크래프트는 여전히 오픈 시간이 되지 않아, 오르세 아뜰리에를 기웃거리며 기다렸다.
오르세 아뜰리에 스튜디오는 마당이 있는 전원 주택으로 공간을 대여해주는 렌탈 스튜디오다. 사이트에서 보고는 이상적인 스튜디오와 가까워서 인스타그램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입구 옆 차고와 같은 작은 공간에는 오자크래프트의 쇼룸이 있었다. 최근 오자크래프트는 안쪽 주택 지하공간으로 자리를 옮기고, 기존의 자리는 빈티지 상점인 크렘므오브제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파주가 아닌 연희동에서 오자크래프트를 처음 찾았을 때 그 공간 자체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천장이 낮고 아주 작은 공간에 빛이 어찌나 예쁘게 들어오던지. 그리고 작가님은 성당에서 들을 법한 음악을 듣기 좋게 큰 소리로 틀어 쇼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 자체가 반할만큼 멋졌다. 그릇은 많지 않았지만 구석 구석을 채운 오브제들, 특히 구석에 스텝이라고 써있던 '뾰자'의 존재까지. 더 넓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자리 잡은 공간 역시 오자크래프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오르세 정원을 지나 발견되는 작은 간판, 몇개 되지 않은 계단을 내려왔을 때 보게 되는 정원의 뷰. 푸른 색감이 느껴지는 작은 개수대 공간이 매력적이라 몇 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공간이 작은 틈새로 보여지는 자리에 뾰자가 주인공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장 이상씩 쌓여있는 그릇들이 새롭기만하고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는 모습인데, 한편으로는 음악이 크게 울리던 그 작은 공간이 왜 그리워지는건지. 거슬러 올라가 어렵게 찾아갔던 한 여름의 파주의 작업실까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울리는 음악과 몇 마디 오가는 대화에 따라 그 짧은 기억이 이렇게 오래 간다는게 놀랍기만 했다.
크렘므 오브제는 빈티지 테이블웨어 셀렉샵이다. 글라스 잔들을 어찌나 예쁘게 연출하고 찍으시는지, 역시 오랜시간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가본 적 없는 웬디와브레드의 한 공간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문이 닫혀있을 때 꽤 오랜시간 밖에서 바라보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창 안으로 놓여진 그릇과 커트러리, 글라스를 채우고 있는 로제와인, 살구가 놓여진 그릇과 한쪽이 깨져있는 그릇들까지도- 창 밖으로 비치는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가게 안은 사진에서 봐 왔던 것처럼, 벽이나 바닥 선반 테이블 등 모든 색감과 질감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대표님께 몇마디 건네고 제일 마음에 드는 글라스 잔 두개를 골랐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더 많은 연희동.
다시 집을 알아볼 때 꼭 이 동네 부동산을 한번쯤 찾아보기로 다짐해본다.
@sarugastory
@manufactcoffee
@ojacraft
@crem.objet
@orsayatlier
3 Comments
문득 좋은 사진엔 좋은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희동에 꼭 살아보기를
ReplyDelete옹미마농님과 함께 연희동 투어가 하고 싶어지는 글과 사진이에요 눈으로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의 찰나를 이렇게나 아름답게 포착한다니 또 한 번 감탄하고 갑니댜💛
ReplyDelete시선이 정성스러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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