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O
atelier O





한 해를 보내며

보상에는 물질과 마음이 동반된다. 보상은 남에게 진 빚이나 물건을 갚는다는 의미부터 어떤 행위를 촉진하기 위한 물건 또는 칭찬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어쨌든 잘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능동적인 태도가 담겨있는 단어라고 생각되었다. 오직 돈이나 물건이 오가는 그런 '보상'뿐만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의미가 담긴 '보상' 말이다.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상품 대신 리워드reward 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단순히 돈을 주고 상품을 바로 구입하는 개념과 다르게, 메이커의 이야기를 믿고 투자하면 얼마 후에 보상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2020년 일 년 내내 보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유난히 힘든 달에는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서 읽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집에서 책을 읽는 주말의 시간 덕분에 다음 한 주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책이라는 보상에는 핸드폰에서 잠시 떨어질 수 있는 시간과 이야기에서 받는 위로가 모두 포함되었다. 평일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이라는게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살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일에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이 고작 그런 것이기도 했다. 

사람과 일을 두고 보답과 보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긴 어렵다. 때로는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빚을 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적절한 보답이나 보상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반대로 받는 만큼 일하면 모든 게 단순해질까? 그런 최저시급 같은 소리는 관계에서도 전문성에서도 어떤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도전에 뒤따르는 성취가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성취감으로 끝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다음 도전을 이끌어내긴 어렵다. 그에 대한 인정과 감사, 칭찬의 표현은 손에 만져지지 않지만 최소한 반드시 필요한 보상인 것이다. 

보답과 보상. 
인정과 감사.
그런 의미들이 제 뜻을 다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절실하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을 감수하고도 마음을 다해 일한다는 것은 거의 수련에 가깝다. 2019년과 현저히 달랐던 2020년의 끝에, 감사 인사를 전해주는 몇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21년에는 더 아낌없는 표현이 이루어지기를. 더불어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이다. 더 오래 힘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2020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한 해 동안 방치한 몸을 수습하려 삶은 계란과 고구마를 며칠째 챙겨 먹고 있었다. 친구가 어머님이 직접 만드셨다며 가져다 준 맨드라미 꽃차는 빛깔이 정말 고왔다. 고구마는 또 다른 친구가 직접 밭에서 캐서 준 것을 맛있게 잘 먹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조용히 열어보고자 르시뜨피존에서 사 온 선물이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어 감사했다. 대표님이 주신 귀여운 노란 상자를 열어보았다. 과테말라에서 온 걱정인형이라고 한다. 이 작고도 기특한 인형을 베개에 넣고 자면 다음날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한단다. 눈물나게 고마운 선물이었다.  


































 






















스물다섯. 일년 이개월이 조금 넘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내 방이 사라져있었다. 부모님은 여동생 그리고 새 식구인 외할아버지와 함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해 살고 있었는데, 방이 셋뿐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집에는 부엌에서 옥상으로 연결된 계단 끝에 작은 옥탑방이 있었다. 때마침 나는 의류학과 졸업반 복학을 앞두고 작업실이 필요했다. 온 벽과 천장을 따뜻한 노란색으로 칠하고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붙여 창고 같던 그 공간을 작업실로 꾸몄고 결국 침대까지 들여 지내게 되었다.
 
졸업 작품 준비에 진심이었던 나는 서울과 일산을 오가며 작업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져 결국 졸업을 일 년도 채 남기지 않고 미싱을 장만하게 되었다. 자세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엄마가 마련해 주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전날 늦은 작업으로 무리한 탓에 늦잠을 자고 있던 나를 엄마가 깨웠다. 아침부터 동대문까지 부지런히 움직여 아시는 분을 통해 컴퓨터 미싱을 사 온 것이었다.

가파른 계단으로 미싱이 어떻게 옮겨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무얼 하고자 하는 내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다. 물론 졸업 작품보다 취업 준비에 더 진심이었어야 했고 도대체 왜 그렇게 밤을 많이 샜던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끝까지 해본 경험이 소중하다. 

2020년 2월. 작업실을 꿈꾸며 호기롭게 집을 나왔다.
사실 오랜 시간 작업실로 꾸며질 방은 창고로 쓰였다. 비우지 못한 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우고 정리하며 필요한 것들을 차례대로 하나씩 장만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같은 옷과 같은 신발을 걸쳐도 행복한 마음으로 세 계절을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1년형 맥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2020년 12월. 집에 아무도 없으면 배송을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상하이에서 한국으로 도착하고 무려 일주일을 더 기다려 받은 나의 복덩이. 그 일주일간의 시간과 오전 중에 받았지만 선뜻 뜯지 못하고 저녁까지 커다란 박스가 놓인 방을 기웃거린 하루 동안의 나의 마음가짐과 다짐을 소중히 기록하고 싶다. 













잘 부탁한다! 나의 복덩이여.





동네 꽃집에서 사온 장미 촬영은 지난 9월.
Newer Posts Older Posts Home

Archives

  • ►  2025 (18)
    • ►  June 2025 (1)
    • ►  May 2025 (2)
    • ►  April 2025 (2)
    • ►  March 2025 (6)
    • ►  February 2025 (6)
    • ►  January 2025 (1)
  • ►  2024 (20)
    • ►  December 2024 (2)
    • ►  August 2024 (2)
    • ►  July 2024 (2)
    • ►  June 2024 (1)
    • ►  May 2024 (1)
    • ►  April 2024 (3)
    • ►  March 2024 (2)
    • ►  February 2024 (2)
    • ►  January 2024 (5)
  • ►  2023 (25)
    • ►  December 2023 (1)
    • ►  October 2023 (4)
    • ►  September 2023 (1)
    • ►  August 2023 (5)
    • ►  July 2023 (3)
    • ►  June 2023 (2)
    • ►  May 2023 (1)
    • ►  April 2023 (2)
    • ►  March 2023 (2)
    • ►  February 2023 (1)
    • ►  January 2023 (3)
  • ►  2022 (32)
    • ►  December 2022 (3)
    • ►  November 2022 (3)
    • ►  October 2022 (2)
    • ►  September 2022 (7)
    • ►  August 2022 (1)
    • ►  July 2022 (4)
    • ►  June 2022 (2)
    • ►  May 2022 (2)
    • ►  April 2022 (4)
    • ►  March 2022 (2)
    • ►  January 2022 (2)
  • ▼  2021 (28)
    • ►  December 2021 (2)
    • ►  November 2021 (4)
    • ►  October 2021 (3)
    • ►  September 2021 (3)
    • ►  August 2021 (1)
    • ►  July 2021 (6)
    • ►  June 2021 (1)
    • ►  May 2021 (1)
    • ►  April 2021 (2)
    • ►  March 2021 (1)
    • ►  February 2021 (2)
    • ▼  January 2021 (2)
      • 보상의 의미
      • 나의 두번째 작업실
  • ►  2020 (25)
    • ►  December 2020 (3)
    • ►  November 2020 (2)
    • ►  October 2020 (2)
    • ►  September 2020 (4)
    • ►  August 2020 (6)
    • ►  July 2020 (1)
    • ►  June 2020 (3)
    • ►  May 2020 (3)
    • ►  March 2020 (1)
  • ►  2019 (9)
    • ►  November 2019 (1)
    • ►  June 2019 (1)
    • ►  April 2019 (3)
    • ►  February 2019 (2)
    • ►  January 2019 (2)
  • ►  2018 (5)
    • ►  December 2018 (2)
    • ►  November 2018 (3)

Categories

  • baking 7
  • essay 58
  • food 47
  • journey 16
  • photograph 30
  • still life 5
Powered by Blogger
  • instagram
  • Youtube
  • pinterest

-

Still life

Home cooking

Travel

ognimano.com
food essay

Designed by OddThemes | Distributed by Gooyaabi Templ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