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의 봄
마종기
드나드는 골목길 저 집 안에
꽃나무 하나가 살고 있었구나.
그늘이 떠난 빈자리인지
하나둘 핀 꽃이 하도 밝아
둥치가 안 보이는 나무 이름은
꽃 한 송이 보고도 환히 알겠네.
저 꽃이 광대무변한 세상인가,
긴 방황 끝내고 돌아온 봄은
애틋하게 나를 다시 유혹하고
숨어 살던 햇살까지 다가와
따뜻한 손으로 땅을 쓰다듬는다.
가슴에만 품고 살던 말들이
천천히 사방에 퍼지기 시작한다.
이제 되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봄은 구름에 앉기 시작하고
오래된 약속이 먼지를 털며
귀향하는 내 생애를 깨우고
겨울의 일몰은 아쉬운 듯
음모를 포기하고 자리를 뜬다.
마종기
지난밤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갔었지?
산도 하나 넘고
배 저어 강도 하나 건너서
인연과 고통이 같은 것이라는
어려운 푯말만 읽고 헤어졌던가.
떠다니는 길에서 혼자가 되어
혹 연인에 취해 긴 잠이 들면
괜찮아,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지구의 가슴까지 이미 간 것을,
기다림과 황야가 같다는 것을,
누가 아니라 한들 섭섭해하랴.
살수록 추워지는 도시에 가도
긴 유언이 되어 움추리지 않겠다.
내 뼈는 아직 너를 떠나지 않았다.
봄이 현란한 목소리로 웃고 있는 사이,
나이 든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고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 약속이 도착한다.
삼월 그리고 넷째주.
월요일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습관적으로 켜놓는 라디오에서 마종기 시인의 '저 집의 봄'이 흘러나왔다.
2020년 9월에 나온 <천사의 탄식>에 있는 작품이었는데 시집을 갖고 있음에도 처음으로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맴돈다. 일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갈때, 퇴근길에, 잠들기 전에 한번씩 펼쳐 읽어본다.
첫 등교와 같은 설레는 삼월은 멀어진지 오래지만 올해 삼월은 뭔가 달랐다. 어떤 단어와 문장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 머무는 것처럼 처음 접하는 일들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매일 똑같이 바빠보이지만 오히려 단순해지고 명확해지는 것들. 그 안에서 엄마의 생신과 외할아버지의 생신을 준비하며 생색내지말고 겸손하자는 다짐들. 기다리는 커피내리는 주말, 아직 싱그러운 꽃시장에서 사온 튤립들. 이런 나날을
긴 방황 끝내고 돌아온 봄은
애틋하게 나를 다시 유혹하고
숨어 살던 햇살까지 다가와
따뜻한 손으로 땅을 쓰다듬는다.
가슴에만 품고 살던 말들이
천천히 사방에 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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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현란한 목소리로 웃고 있는 사이,
나이 든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고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 약속이 도착한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결국은 책을 더 펼쳐보자는 결론으로,
언어에서 위로받으며 그렇게 진짜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