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 말없이 잠잠하게
묵묵히 가을이 왔다. 집 앞 우거진 은행나무에서는 하나둘 은행이 떨어지고, 생각보다 천천히 은행잎으로 물들고 있다. 떨어진 은행에서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봤다. 나도 떨어진 은행을 피해가지만 얼굴을 찌푸리기까지 한 적은 없었다. 매년 가을마다 은행을 줍고 씻어내 엄마에게 전해주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거나, 외할아버지댁 앞 거대한 은행나무를 그려보거나, 팬에 구워먹으면 맛있겠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은행이나 밤, 배추까지도 버려지는걸 종종 봤다.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겠지만 시골에서는 그 모든것들이 '아깝다'고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밭을 외면하게 된 외할아버지는 아깝지 않다며- 올해 김장까지 생략하자고 말씀하셨다. 냉동고에 넣어 놓고 아껴먹던 은행이 더욱 귀해져서인지 종종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을 보면 그 생각이 난다.
묵묵히 제 몫을 지킨다는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각자의 자리를 잘 해낸다는게 간단하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 퇴근 후엔 식탁에 말려놓은 꽃들을 멍하니 보면서 최대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든다. 수요일이 넘어가면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가 다시 주말 아침. 커피를 내려먹으면서 또다시 모든게 괜찮아지는 식이다. 추위를 타지않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지만 환기를 시키려 창문을 열때면 뭐라도 걸쳐야하고, 의자에는 안입는 모직 옷으로 온기를 더해주어야하는 시월. 조금만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말려지기 전, 꽃.친구가 결혼식장에서 가져다 주었다.
9월 초 5일간의 여름 휴가
9월 말 또다시 찾아온 5일간의 추석 연휴.
여름까지 달려온만큼 온전히 쉬면서 내가 먹은 것들.
시작은 역시 커피다.
주말이면 꼭 하루에 커피 한잔을 맛있게 내려마신다. 이 날은 유리잔에 커다란 네모 얼음 두개를 담아 우유를 붓고, 그 위에 엑설런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뒤 에스프레소 샷을 내려 호주식 아이스커피를 해먹었다. 끝까지 마실 때까지 얼음이 거의 녹지 않아 정말 맛있었다.
요즘은 뒤로 보이는 컴프레소보다 핸드드립으로 내려마시는 편이다. 9월에는 언니가 호주에서 보내준 원두를 정말 맛있게 잘 마셨다.
주말이면 쌀밥과 된장찌개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한끼정도는 꼭 냄비밥을 해먹는다.
이날은 엄마가 시골에서 따다준 호박잎을 쪄서 들기름에 볶은 가지와 마늘 장아찌에 쌈싸먹은 날. (+건새우와 애호박을 넣은 된장찌개) 보리차도 끓이고 아주 행복했던 한끼다. 이렇게 먹으면 또다시 5일정도 쌀밥을 해먹지 않는다.
내 손으로 처음 해본 수육.
간장, 식초, 설탕에 버무린 부추와 향긋한 시골 깻잎과 함께 먹었다. 막걸리없이 건강하게 쌈싸먹었다.
꾸준히 먹는 요거트볼
동네에 바게트를 정말 맛있게 하는 빵집(밀곳간) 이 있어 행복하다. 감자전 바삭하게, 가지, 토마토, 아보카도,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맛있는 화이트와인이 있어서 잘 차려먹은 어느 저녁.
계란 노른자와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만 넣은 까르보나라. 소금집 판체타로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간단한 쁘띠 피자.
피자가 맛있어서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또 해먹었다. 방울토마토, 에멘탈치즈, 소금집 초리조..
나의 작고 귀여운 토스터에 껴버린 쁘띠 피자.
토스터가 너무 작아 딜이 움츠리고 말았지만 참 맛있었다.
역시 커피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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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서 해먹은 루벤 샌드위치. 소금집에서 파스트라미를 주문한 후 양배추로 직접 사우어크라우트도 만들고, 2주를 기다렸다가 해먹었다. 행복한 주말 브런치였다. |
어느날 해먹은 버섯 리조또.
사놓은 닭한마리가 눈에 밟혀 급하게 해먹은 토마토 크림 치킨. 여기에 sumac 과 커리 파우더, 딜을 넣고 고수와 함께 먹었다. 삶은 감자도 함께! (+사워도우 브레드)
엄마에게 부탁해 일산에서 공수한 고수 한 팩을 참 오랫동안, 한톨도 버리지않고 열심히 먹었다. 호박스프! 핸드블렌더가 아직 없는 내가 열심히 으깨만든 호박스프다.
자몽주스가 땡겨 몇병 사먹었고. (따옴)
내사랑 거봉을 1일 1송이 해치우며 여름을 떠나보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또 새로운 요리를 부지런히, 커피도 부지런히 내려 마셔야겠다.